두께와 굵기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우리말은 ‘두께’와 ‘굵기’를 구별한다.
두께는 두꺼움을 나타내는 말로 책이나 판자 등의 두께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두껍다’의 상대적인 말(보통 ‘반대어’나 ‘반대말’로 쓰임)은 ‘얇다’이다. 굵기는 굵음을 나타내는 말로 막대나 팔뚝 등의 굵기를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굵다’의 상대적인 말은 ‘가늘다’이다. 연필과 팔다리는 굵고 가늘며 책과 스마트폰은 두껍고 얇다. 따라서 팔다리와 허리는 ‘굵다’거나 ‘가늘다’고 표현하며 손바닥 발바닥은 ‘두껍다’거나 ‘얇다’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최근에 굵기를 두께처럼 말하는 현상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팔이 두껍다.’라거나 ‘종아리가 얇다.’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왜 ‘두께를 표현할 때’는 ‘굵기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굵기를 표현할 때’는 ‘두께를 나타내는 말’인 ‘두껍다’나 ‘얇다’는 말을 사용하는가?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문제를 ‘구글 번역’을 통해 살펴보았다. 영어로 ‘두껍다’는 말은 ‘thick’, ‘가늘다’라는 말은 ‘thin’으로 번역된다. 이들 영어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 ‘thin’은 ‘가는, 가늘다’로, thick은 ‘두꺼운, 두껍다’로 번역된다. 그런데 ‘굵다’와 ‘가늘다’도 ‘thick’, ‘thin’으로 번역된다. ‘두께’도 ‘thickness’, ‘굵기’도 ‘thickness’로 나타난다. 구글 번역에선 굵기와 두께가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영어 사전에서도 굵기와 두께는 별개의 단어와 의미로 구분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우리가 영어의 ‘blue’와 ‘green’을 그냥 ‘푸르다’로 처리하는 경우와 비교할 수도 있다.
이런 영어와 한국어의 차이 때문에 혹시 학생들이 영어 공부 과정에서 한국어의 굵기와 두께를 같은 말로 혼동했을까? 영어로는 굵기나 두께가 같은 것으로 나타나니 이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언어를 습득한 자가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이미 습득한 언어가 새로 배우는 언어에 간섭하는 사례가 있다. 그런데 위의 경우는 그 반대로 기존에 습득한 한국어를 나중 배운 언어인 영어가 간섭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면 학생이 영어 ‘thin, thick’을 배우기 전에 ‘두께, 굵기’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었을 수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영어가 한국어에 간섭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 언어에 대한 다른 언어의 간섭’이란 한 마디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매우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