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민족의 얼을 고취시킨 ‘삼일절 노래’ 작사자 정인보

관리자 승인 2018-02-27

민족의 얼을 고취시킨

‘삼일절 노래’ 작사자 정인보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육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초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는 ‘삼일절 노래’는 정인보 선생(1893~1950)이 작사하고 박태현 선생(1907~1993)이 작곡하였다. 정인보 선생은 서울 출생으로 한문학에 정통하고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데다 글 솜씨가 뛰어났다.

 

일제가 한국을 침탈하여 국권을 빼앗기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박은식‧신규식‧신채호 등과 함께 독립운동 단체인 ‘동제사’를 조직하여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1912년 아내가 첫 딸을 낳은 직후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줄곧 검은색으로 된 한복과 모자,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이는 아내의 죽음뿐만 아니라 나라 잃은 설움을 동시에 슬퍼하는 것이었다.

 

이후 정인보 선생은 연희전문학교, 이화여자전문학교 등에서 학생들에게 역사와 한문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고취시켰고, 일간지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민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했다.

 

당시 매우 가깝게 지내던 최남선(1890~1957)이 친일로 변절하자 그의 집 대문 앞에서 “내 친구 최남선이 죽었다”고 통곡하였다고 한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정인보는 우리나라의 여러 학문을 총칭하는 뜻으로 ‘국학’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고, 평생 역사 속의 민족의 얼을 강조하며 살았다. 그는 ‘삼일절 노래’뿐만 아니라 ‘광복절 노래’, ‘개천절 노래’, ‘제헌절 노래’ 등 우리나라 국경일 노래의 가사를 모두 썼다. 그에게 이런 일이 맡겨진 것은 그의 정신과 삶 전체가 조국과 민족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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