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세계)] 교회의 시작(3)

관리자 승인 2018-02-12

1. 교회의 시작(3)

 

 

바나바와 안디옥 그리고 사울의 등장

 

 

스데반 사건으로 일어난 유대인의 기독교 박해로 흩어진 사람들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 안디옥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서 제 3의 도시라고 불리는 인구 30만의 로마제국 내 시리아의 지방행정수도였다. 사마리아에 베드로와 요한을 파견하여 연결을 시도했던 예루살렘교회가 이번에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하였다. 바나바는 그곳에서 목회사역을 감당했는데, 이 때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 머무르고 있던 회심한 사울을 데려와 동역하게 된다.


사실 사울은 회심하기 전 교회를 매우 잔혹하게 박해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엄격한 바리새인이요, 당대의 학자였던 가말리아 밑에서 수학했고, 나중에 유대인 최고 공의회인 산헤드린 공회원까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울은 나면서부터 로마인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 지방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당시 로마는 몇몇 도시들을 지정해서 퇴역한 로마군인들이 여생을 편안히 보낼 수 있도록 하였는데,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비록 로마인이 아니더라도 로마 시민권을 주기도 하였다. 길리기아 다소가 그런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에 사울은 부모를 따라 로마인이 되었다. 사울은 스데반 집사를 죽일 때 일정한 역할을 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기독교인들을 잡아다 옥에 가두었으며 심지어 그 일들을 위하여 대제사장으로부터 위임장을 발부받아 다메섹까지 쫓아갔던 골수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군사들을 이끌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4-6).”사울은 크게 충격을 받고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그런데 주께서는 환상 중에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셔서 사울을 찾게 하셨고, 그 말씀대로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와 안수하니 다시 시력이 회복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사울은 그 즉시로 그리스도의 박해자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전도자로 변신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잔멸하려고 쫓아다니던 자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니 다메섹의 그리스도인들은 놀라워하며 때로는 경계도 하였고, 유대인들은 더욱 당혹해하며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이에 사울은 다메섹에서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으나 그곳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사울의 변화를 믿지 못하여 바나바가 데리고 다니며 저간의 일을 설명해야 했다. 이후 사울은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돌아가 10여년을 보내게 되고 바나바의 권유로 안디옥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

 

바나바와 사울의 열정적인 사역으로 안디옥교회는 더욱 더 부흥하고, 그렇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안디옥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안디옥 사람들은 크리스티아노이(그리스도께 속한 자들)라고 비아냥거리며 경멸했다. 그러나 안디옥교회 신자들은 오히려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받아들여, 비로소 그때부터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안디옥교회는 부흥을 거듭하여 선교기지로서 예루살렘의 위치를 이어받게 되었다. A.D. 45년경 예루살렘 지역에 큰 흉년이 들어 예루살렘교회가 크게 어려워졌을 때 안디옥교회는 구제헌금을 거두어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보내기도 하였다.

 

 

초대교회 선교 중심인물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베드로 사도는 초대교회 발전 과정의 중심인물이었다. 오순절 성령 강림 때 회중들 앞에서 설교했고, 요한과 함께 초대교회 중심 사도로서 땅 판 값을 속이고 헌금 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처벌하였으며, 여러 곳을 다니며 병을 고치고 설교와 안수를 하며 전도하였다.

 

A.D. 44년경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야고보를 죽였을 때 옥에 갇힌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게 된다. 이후 베드로는 팔레스틴 지역을 벗어나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있던 헬라파 교회들을 둘러보며 사역하였다(갈 2:11-14).

 

이후 초대교회 선교 중심인물은 베드로에게서 사울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데 히브리 이름의 사울은 바울이라고 하는 그리스 이름도 갖고 있었는데(행 13:9), 성경에는 사울로 기록되다가 (행 13:13)에서부터 비로소 바울로 기록되기 시작한다. 그때가 바울이 본격적으로 선교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때임을 감안하면 바울이라는 그리스 이름이 선교여행에 더 적당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사울이 바울로 불리어지기 시작한 때는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은 이후부터이다.

 

 

바울의 1차 선교여행

 

 

A.D. 50년경 안디옥교회에서 파송 받아 바나바, 마가(요한)와 함께 1차 선교여행을 떠난 바울은 구브로섬과 소아시아지역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구브로의 살라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섬 가운데를 지나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마술사를 맹인이 되게 만들어 그곳 총독 서기오 바울을 믿게 하였다.

 

구브로섬 바보에서 배를 타고 버가에 이르러서는 수행원 마가가 그들을 떠나 돌아가는 일이 일어났지만, 바울 일행은 더 나아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서 거푸 설교할 때 ‘이방인들이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는(행 13:48)’ 역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서 회당에 들어가 설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그곳에서도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악감을 품게 하였으나 바울과 바나바가 계속해서 복음을 말하니 시내의 무리가 둘로 나뉘어졌다. 결국 순종치 아니하는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돌로 치려고 할 때, 그들은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

 

루스드라에서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켜 세우니, 일단의 무리가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행 14:11)’ 하며 바나바는 제우스, 바울은 헤르메스라고 칭송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곳 제사장과 무리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제사까지 지내려고 하여 황급히 말리기도 하였다. 이곳에서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끌어 내다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바울과 바나바는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오던 길을 되돌아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을 거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돌아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행 14:22)’ 버가를 지나 안디옥교회로 돌아왔다.

 

                                                                                                                                                                
           <표지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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