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 목사 로마서 설교 (18) 아브라함과 조상이야기(롬 4:9-25)

관리자 승인 2019-05-13

아브라함과 조상이야기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사람을 꼽으라면 아마도 아브라함이 아닌 가 싶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선뜻 믿음의 조상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브라함은 실제 모든 사람의 조상은 아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주장하는 것처럼 할례 받은 그들만의 조상도 아니다. 이는 오늘 본문에서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4:11) ;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고 기록된 말씀에서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브라함이 율법과 할례가 있는 유대인들의 조상이라는 그릇된 관념을 떨쳐버리고, 그 이름 그대로 믿음의 조상이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어떤 믿음의 조상인가?

 

                    
                                                                                    

1.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사는 자의 조상이다.

 

아브라함은 부활신앙을 가졌다. 그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4:17)”는 사실을 믿었다. 그리고 하늘의 무수한 뭇별과 같이 자손을 번성케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15:5)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처지였으나 바라고 믿어(4:18),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4:19) 하나님께서 능히 그 약속을 이루실 줄 확신하였다(4:21).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이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부활신앙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15:6; 4:22). 그리고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심은 그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즉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 모두를 위함이라고(4:23-24) 성경은 증거한다.

다시 말해서 부활신앙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로 여기심을 받고,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이를 예수께서도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22:32)”고 증거하심으로서, 아브라함이 죽었다가 다시 산 자의 조상임을 교훈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곧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내어줌이 되었다는 것과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다.

 

 

2. 그는 약속을 받은 자의 조상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17:4-6)”고 하여,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언약하셨다(4:13).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는가? 율법을 잘 지켜서일까? 아니다. 율법은 약속이 주어지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나타났는데, 그렇다면 율법이 주어지기 전의 사람들은 후사가 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3:20). 그래서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4:13-14)”고 하여 믿음으로 상속자가 됨을 증거 한다. 그리고 이 믿음은 자기 공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이니, 상속자가 되는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에 속하는 것이다(4:16).

 

하나님께서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을 아브라함의 후손을 (15:4-6)에서 언약하신 바가 있다. 물론 이 언약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에 작정하신 것을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같은 아브라함의 몸에서 난 자라고 하여도 약속의 자녀기 있고 육신의 자녀가 있으니, 우리가 약속의 자녀가 된 것은 은혜요 축복이다. 왜냐하면 아브라함만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후손 곧 하나님을 믿는 우리도 의로 여기심을 받기 때문이다(4:23-24).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자의 조상이다.

 

 

3. 그는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의 조상이다.

 

지난 시간에 나는 다윗의 행복론에 대해서 설교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행복한 자라고 착각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렇다. 그들은 율법을 받았고 할례를 받았으므로 가장 행복한 자들이며 의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아브라함을 예로 들면서 유대인들의 잘못된 사상을 낭독하고 있다.

 

그러면 누가 진정 믿음의 의를 얻은 자인가?’ 아브라함은 할례 받기 이전에 이미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았으므로, 무할례시에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고, 또한 무할례자가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의 조상이 되었다.

즉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관계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의를 얻은 자의 조상이라고 본문은 교훈하고 있다(4:9-12).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예나 지금이나 모든 족속 모든 사람 중에서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의 조상이 된 것이다.

 

 

(맺음) 많은 모순과 착각 속에 살았던 유대인들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신앙의 적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의 가르치심과 수많은 표적을 보고서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고, 마침내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천추의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이 저지른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조상 자랑이나 보이는 의식에 매달렸던 것처럼, 우리 역시 심령에 주님을 모시는 것보다는 의식과 교회 조직 속의 나를 과시하는 풍조에 젖어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믿음의 조상은 혈통의 조상이 아니며 의식 종교인의 조상도 아니다. 그는 부활 신앙의 조상이며, 그리스도 안에 약속된 자의 조상이며, 믿음으로 의를 얻는 자의 조상일 뿐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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