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 설교(25) 우리 속에서 발견된 두 법 (롬 7:14-25)

관리자 승인 2020-03-06
         


하나님의 율법은 마치 어두움을 비춰주는 빛과 같아서, 죄로 어두워진 사람의 마음을 밝게 비추어 준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우리로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하였는데(7:5), 율법의 조명을 받은 후에는 우리 속에 일치될 수 없는 두 법이 존재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상이한 두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마음의 법과 자신이 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행하는 지체의 법을 말한다. 우리가 전에 육신에 있을 때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사망을 위하여 아무 거부 반응 없이 열매를 맺어 왔다. 그러나 율법의 조명을 받은 후부터는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는 것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율법의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내 속에서 발견된 이 두 법은 내게 대하여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이 두 법은 내 속에서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

이 두 법, 곧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은 서로 밖에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은 우리 속에 내재하는데, 하나님의 법은 마음에서 선을 행하기 원하고 죄의 법은 육체로 악을 행하기 원하므로 항상 대결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바울 사도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7:22-23)”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이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일 우리 속에 이 싸움이 없다면, 그것은 전과 같이 죄를 향하여 사망의 열매를 맺으면서도 알지 못함이니,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는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고후 7:14-16)”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 속에는 일치할 수 없는 두 세계로 인하여 선한 싸움을 싸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이 있다면 반드시 이 싸움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고, 아울러 이 싸움은 무익한 것이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영적 출애굽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고통 받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세의 인도로 나올 때 얼마나 큰 싸움을 싸웠는가? 그것은 바로 원하는 마음의 법과 원치 아니하는 육체의 법이 싸우는 것이고,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 속에 내재하는 마음의 법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는 그림자라고 볼 수 있다.

 

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자신의 지체 속에 다른 한 법, 곧 죄의 법이 있어 그 아래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라고 고백한다. 바울의 이 고백은 사망의 구렁텅이에 있는 자의 깊은 탄식 소리로 들리기 쉽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우리 한 번 새 생명이 소생하는 그 위력을 자연계를 통해서 알아보자. 봄이 오면 마른 나뭇가지와 굳은 땅에 새싹이 힘차게 돋아나는 것을 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새 생명은 세상의 어떤 악조건 하에서도 그 장애를 이기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바울 사도가 곤고해 하는 것은 깊은 탄식 소리가 아니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소망을 보며 두 법의 싸움에서 인내하고 있는 고백의 목소리다.

우리는 지금 우리 속에서 싸우는 두 법으로 인하여 곤고함을 당하는가? 그것은 좌절이나 절망에 이르는 곤고함이 아니고, 하나의 새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산모의 진통이라는 사실을 알고 감내하자.

 

3.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의 싸움은 승패가 불확실한 싸움이 아니다. 세상 전쟁은 병력이나 무기의 우세에 관계없이 인간의 예상을 초월하는 결과도 종종 나오지만, 우리의 전쟁은 이미 승패가 보장된 믿음의 싸움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자신이 도저히 승리하지 못할 것을 암시하는 듯 한 말로 들릴 수 있다. 아무도 그를 건져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강하게 드러내려는 데서 취한 논법이다. 다시 말해서 나를 건져내 주실 분이 예수님 외에 또 누가 있겠는가?”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연이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25)”라는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망에서 건져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이 모든 일을 만세 전에 예정하시고 그 언약하신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마음으로 감사하고 또한 생활로써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마음에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악을 행하고 있다. 바울도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7:20)”라고 하여 스스로 모순된 삶을 살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오직 그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라고 한 바울 사도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하며, 이 진리를 깨달은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이다.

 

(맺음) 우리는 내 속에서 싸우는 두 법으로 인해 곤고한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보장된 승리를 바라보고 외치는 구원의 호소이기에, 결코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 사이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스스로 싸워 이김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것이 아니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기에 승리자가 된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감사하노라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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