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쉽게 읽는 기독교 강요 8-1

관리자 승인 2020-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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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신빙성은 인간의 이성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충분히 증명된다

    
                                                                                               편집 이상호목사(본지 발행인)

 

 

1. 성경은 인간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다

우리가 성경을 존엄하게 여기고 경건하게 받아들이며 다른 서적과 달리 뛰어난 것으로 인정하기만 하면, 이전에는 우리 마음에 성경의 확실성을 심어주지 못하던 논증들도 매우 유용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훌륭한 신적 지혜가 질서 있게 배열되어 있고, 천상적인 성격의 완전한 교리가 모든 부분에서 아름답고 조화롭게 풍기고 있으며, 그 밖에도 책에 위엄을 가져다주는 특성들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어서 놀라운 확신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은 성경의 언어의 아름다움보다는 그 주제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된다. 이는 천국의 신비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대부분 평범하고 겸손하게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이 화려하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되었다면 불신자들은 아마 성경의 힘이 웅변의 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진리의 힘은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에 말의 기교가 필요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고전 2:4)”에 있다고 고백했다.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사람들의 책을 읽어봐도 놀라운 감동을 줄 수 있지만, 그 후 다시 성경 읽는데 전념하면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며 골수에까지 새겨짐으로써 철학자들의 힘을 거의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저작이 아무리 세련되게 다듬어졌다고 할지라도 성경만큼은 감동을 줄 수 없고, 성경을 읽으면 신적인 어떤 것을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2. 중요한 것은 성경의 문체가 아니라 내용이다

선지자들 중 어떤 이들은 세속적인 저자들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우아하며 화려한 언어를 사용하고, 또 어떤 이들은 소박하고 다듬어지지 문체를 사용하지만 수사법상 조금의 결함도 없다. 즉 아름다운 말들을 풍성하게 사용한 다윗과 이사야, 그리고 거칠지만 소박한 언어를 구사한 아모스나 예레미야나 스가랴의 글들 모두 어디서나 성령의 위엄이 확실하게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한계를 능가하지 않는 선지자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의 교리를 무미건조하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을 평가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스스로 나타내는 것이다.

3. 성경의 고전성(古典性)

성경의 고전성 그 자체는 적지 않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모세는 성경을 기록할 때 새로운 하나님을 고안해 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영원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받아들였던 것을 선언했을 뿐이다.

만약 이스라엘이 전혀 듣지도 못했던 것을 모세가 제시했었더라면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이나 400년이라는 연수에 대해서도 역시 그들은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모세가 자기 교리의 전승을 그렇게 먼 곳까지 더듬어 올라갔다고 하면, 성경이 고전성에 있어서 다른 책보다 훨씬 우수함을 알 수 있다.

 

4. 모세의 예증이 보여주는 성경의 진실성

이처럼 율법의 교리는 비록 읽혀지거나 참되게 알려지지도 않은 먼 시대로부터 이미 모든 민족들 사이에 알려졌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사악한 자들이 어떤 의혹도 품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셨다. 예컨대 야곱이 영감을 받아 자기 자손에 대해서 언급한 것을 모세가 기록하고 있는데, 모세는 이때 자기의 종족을 고귀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과 같이 영원한 오명의 낙인을 찍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49:5-6)”

모세는 분명히 자기의 가문인 레위 지파가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명예스러운 일에 대하여 침묵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지파 사람들에게 심한 미움을 받는다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성령의 감동으로 자기의 조상이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모세는 자신의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의 사악한 불평도 가감 없이 기록하였고(12:1), 최고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아들들을 대제사장의 자리에 앉히지 않고 가장 낮은 위치로 떨어뜨렸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모세가 육신의 생각에 따른 것이 아니라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여 말했다고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예증들 말고도 율법서에는 모세가 하늘에서 보내심을 받은 사자임이 분명하다고 하는 확신을 뒷받침해 주는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5. 이적은 하나님의 사자(使者)의 권위를 강화시킨다

모세는 여러 가지 이적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이적들은 그가 공포한 율법과 교리에 대한 확증이다. 그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오른 일, 율법을 선포할 때 얼굴에서 광채가 난 일(34:29), 사방에 번갯불이 번쩍이며 우렛소리와 나팔 소리가 들려온 일(19:16), 그가 막대기로 물을 치자 당장에 물이 솟은 일(20:10-11 ; 17:6 ; 고전 10:4), 그가 기도를 하자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일(11:9 ; 16:13 ; 고전 10:3) 등 많은 이적들이 일어났는데, 이런 것들은 모세가 참된 선지자였다고 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증거임에 틀림없다.

모세가 온 회중들 앞에서 율법과 교리를 공포하였는데, 회중들은 여러 이적의 사건들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으므로 모세의 공포가 사실인지 거짓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회중들은 자신들이 본 이적적인 사건들과 모세의 공포가 일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세가 하나님의 사자임을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었다.

 

6. 모세의 이적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모세가 이적에 대해서 말할 때는 어떤 기회만 보이면 온 회중을 선동하여 떠들썩한 반항을 일으킬 수 있었던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즉 상황이 험악할 때 모세는 이적을 행함으로써 그 상황을 잠잠케 하였다.) 그러므로 이 사실에서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회중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통하여 모세의 이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세의 이적이 너무도 명백하여 세속적인 저자들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거짓의 아비는 그 이적이 마술에 의한 것이라고 비방하였다(7:11, 9:11). 신접한 자와 점장이에게 묻는 자를 돌로 치라(20:6)”고 할 정도로 미신을 증오한 모세를 요술쟁이로 억측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과 형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할 뿐 아무것도 아님을 공언함으로써 비난의 표적 일체를 지워버렸다(16:7).

모세의 이적이 마술이 아니었음은 사건 자체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마술이 백성들의 식량(만나)을 매일같이 하늘에서 내려올 수 있게 하겠으며, 또한 그 날의 적량을 초과하여 거둔 사람들에게는 만나를 부패하게 하여 그들이 불신으로 인한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겠는가(16:19-20)? 마술로서는 이룰 수 없는 일들이다.

또 어떤 때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종을 넘어뜨리려고 온 민중이 무례하게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소수의 무리들이 음모를 꾸미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럴 때마다 모세가 마술로 그들의 횡포를 피할 수 있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그의 교훈이 모든 시대에 확신을 주었다는 사실을, 그 결과가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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