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설교(35) 아브라함의 자손론 시비(롬 9:6-13)

관리자 승인 2020-09-29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배척한 것도 실상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에 결부된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8:33)”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것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8:37-47)”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혈통적 아브라함의 자손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이면적 자손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 된 것을 왜 그렇게 자랑하는가? 그것은 바울 사도가 고백했듯이, 그들은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낳기 때문이다.

바울 사도도 자기 골육 친척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근심과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이제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바울이 깨달은 진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 말씀의 신실성이다. 바울은 자신의 골육으로 인해 근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21:12)“~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이 말씀은 이스마엘에게는 기업이 없었고 이삭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날 아브라함의 골육이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6-8)”

이처럼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1. 택한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신이 생산하지 못하자 그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시켰다. 그것은 비록 여종의 몸에서일지라도 아브라함에게서 난 자면 다 약속의 자녀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여종이 잉태하게 되니 분위기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즉 하갈이 사라를 멸시하므로 가정에 불화가 생긴 것이다. 결국 여종의 몸에서 이스마엘이 출생하고 그 이후 또한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라에게서 이삭이 출생하였다. 그런데 사라가 본즉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급기야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그의 소생을 내어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로 인해서 근심이 깊었지만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21:12)”

그렇다. 사라가 말했듯이, 어차피 종의 아들은 이삭과 함께 기업을 받지 못한다. 바로 이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깊이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골육 친척이 복음을 대적하는 것에 대해서 깊은 근심과 고통이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이삭과 이스마엘 간의 관계에서 보여 준 말씀을 깨달은 후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8)”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택함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는 행위의 선악 이전에 믿는 자들을 택하셨다.

이스마엘이나 이삭이나 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태어났지만, 오직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씨로 여기심을 받았다. 그러면 이삭을 비롯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언제 택함을 받았을까?

그것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9:10-11)”

이 말씀은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도 아니하고 따라서 아무 일도 하기 전에 이미 택함을 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1:4-5)에서도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증거 한다.

세상의 그 어떤 종교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다. 그것들은 모두 사람이 만든 종교이기에 사람들에게 어떤 선을 요구하고 그 행위의 결과를 보고 무엇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부르실 때 우리에게 단 하나의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 그리고 예정하신 대로 섭리하시는 분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택 교리는 사람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으신 사랑의 법이다.

 

3.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선택하셨다.

리브가의 태중에 쌍둥이가 잉태되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9:12)”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궁금증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도 왜 하나님께서는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시는가?’라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1)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생각은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 (2)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1:11)”라고 증거하듯이, 하나님은 만사를 원하시는 대로 하시는 분이시다. (3)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으로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이나 선택교리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것은 자신의 잣대로 하나님 나라를 측량하려는 어리석음이요, 불신앙이다.

 

(맺음)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속하는 선택과 유기에 대하여 어리석은 변론이나 불평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더 깊은 불신앙으로 빠트릴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기된 사람들에 대한 의문과 불합리한 변론을 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우리는 선택받은 기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감사하고, 그 은혜에 감격하여 복음 사역에 헌신해야 한다. 그것이 선한 일이며 복 받은 자의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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