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설교(35)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롬 9:14-18)

관리자 승인 2020-10-17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라는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 왜 누구는 구원하시고 누구는 유기하시는가라고 항변한다. 이에 대하여 바울 사도는 두 개의 가상질문을 통해 답변하는 방식으로 설명하여 우리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 첫 번째 가상질문은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그렇지 않다라고 즉각적인 부정을 하며,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고 그 이유를 밝힌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러면 곧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셨다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뇨라는 것인데, 이에 대한 답으로 바울 사도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들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9:21)”라고 설명한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으로 택하시고 역사하신다. 그분은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8)”고 말씀하시며, 리브가의 아들이 뱃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9:12,13)”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세의 노래 곧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32:4)”라는 말씀이 진실로 각인돼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일까? 성경에서 보여 준 예를 들어 알아보자.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하게 보기 때문이다.

(20:1-16)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자.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에 장터에 나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주기로 약속하고 품꾼을 얻었다. 그리고 제삼시에 나가서도 동일한 임금을 주기로 약속하고 품꾼을 얻었으며, 제육시와 제구시 그리고 십일시에도 동일한 품삯으로 품꾼을 얻었다.

그리고 날이 저물어 일이 끝나자 포도원 주인은 품꾼들에게 약속한 대로 한 데나리온씩을 지불하였다. 그러자 먼저 온 사람들은 나중에 온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하였다. 이때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20:13-14)”

이 말씀에서 주인은 1) 자신은 약속대로 하였고, 2) 나중 온 자에게도 선을 베푸는 것이 자신의 뜻이었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선한 일을 하였는데 왜 나를 악하게 보느냐(20:15)’라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하게 본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을 모르기 때문이다. 포도원은 천국을 비유하는 것인데, 이른 아침에 들여보냄을 받은 자들은 나중 온 자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복되게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악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불의하게 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울 뿐이시며, 완전하고 공평하신 분이시다.

 

2.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자.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하였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모든 장자가 죽고 홍해에 수장되는 일을 당하였다. 그러면 이 일이 불공평한 것인가? 아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행하셨고 주권적으로 역사하셨기에 불공평한 일이 아니다.

이는 어느 부자가 고아원에서 한 아이를 데려다가 잘 기르고, 나중에 막대한 유산까지 물려주어 칭찬받는 것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이 왜 우리에게는 주지 않는가?’라고 원망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 부자는 자신의 것을 자신의 뜻에 따라 자신의 행사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악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인간의 구원이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9:16)”라고 증거 한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는 어느 누구의 요청이나 노력이나 공적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때가 되면 작정하시고 예정하신 자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생각에 좋은 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선으로 보지 않고 악하게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은 죄가 된다.

 

3. 사람들은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신다고 비방한다.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께로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하며 원망했다(15:1-2). 그리고 예수께서 세리장이요 부자인 삭개오 집에 유하러 들어가자 뭇사람들이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라고 수군거렸다(19:1-7). 그리고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함께하는 것을 보고도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못마땅했다(9:10-11).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13) ;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9-10)”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죄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구원받은 교제요 주님의 뜻이니, 이들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오직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만이 언약의 자손이라는 관념 때문에 예수께서 하시는 일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예수께서 부르신 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들어가신 집에 구원이 이른 것이고, 예수를 영접한 자는 누구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인 것이다.

 

(맺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떻게 자기 백성을 택하셨는가? 그것은 눈에 보이는 혈통 관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사람들의 노력이나 요청에 따른 것도 아니며, 세계 어느 민족을 무론하고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주권적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관점과 인간의 주권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악하게 보지 말자. 그의 기쁘신 뜻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며 선이시다. 하나님은 찬송과 영광과 존귀를 세세에 받으실 분이시다.   (정리: 원주인터넷신문 나루터 발행인 이상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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