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설교(37) 토기장이의 권한 (롬 9:19-24)

관리자 승인 2020-10-31
           


모든 인간은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하여 구원을 받았고, 그 외의 많은 사람들은 유기되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택받지 못한 자들을 죽이신다는 뜻이 아니라, 죄로 인해 이미 죽은 자들을 그대로 버려두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머리로는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의문을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토기장이의 비유를 통하여 그 의미를 알아보자.

(9:21)을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라는 물음을 시작된다.

이 세상에 진흙이 아무리 많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토기장이의 손에 의하지 않고서는 그릇으로 변신하지 못한다. 그러나 진흙 한 덩이가 토기장이의 뜻에 따라서 그릇으로 구워내 지면 그것은 값을 지니게 되고, 고려청자나 백자같이 고가의 귀한 물품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것은 천하게 쓰일 것으로 만들어져서, 쓰다가 깨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값비싼 청자나 천히 쓰는 그릇이나 깨어지면 한 줌의 흙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도 본래 진흙 한 덩이로 빚어진 토기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이 두 가지 사실을 연관시켜 보자.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바울 같은 사람들도 그 육체로는 다 진흙 한 덩이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그들과 우리들이기에, 그 값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한 그릇들이 되어 있다. 하나님은 신령한 토기장이시다.

 


 

1.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2:7)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2:19)”라고 증거 한다. 즉 이 세상에 수십억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그 육체의 근본은 흙이요, 아울러 각종 들짐승과 새들도 동일한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아무리 귀한 일을 하는 자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한 줌의 흙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 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비교하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하나님을 향한 어떤 불만이나 의견 제시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9:20)을 보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라고 증거 한다. 그렇다. 모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뜻에 따라 한 덩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어떤 그릇이 임금님 상에 오르는 귀한 그릇이 되었다고 천한 그릇이 불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돌릴 뿐이다.

 

2.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귀하게도 천하게도 쓰신다.

(딤후 2:20-21)을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금과 은 그릇은 귀하고 질 그릇은 천하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그릇의 어떤 외적인 조건에 구애받지 말고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 말씀을 인간 사회에 비추어 보면, 인간의 다양한 계층이나 직분 자체가 귀하고 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분이 주신 은사대로 쓰이는 자가 귀한 일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리나 죄인이나 가난한 어부나 천대받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님의 택하시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귀한 그릇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누가 하나님의 귀한 그릇이 되느냐하는 것은 사람의 조건이나 노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멸하기로 준비 된 그릇과 영광 받기로 예비 된 그릇이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영광의 그릇으로서 자신들만이 구원받는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증거 한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음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였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9:22-24)”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에 관계없이 주권적으로 진노의 그릇과 영광의 그릇을 예비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스라엘 백성을 많은 나라 많은 민족 중에서 선민이라고 하셨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선민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민족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델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서 난 자가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는 아닌 것이다. 오직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예수는 증거 한다.

이제 우리는 구원받아 영광에 이르는 것이나 유기되어 멸망에 이르는 것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음을 믿고 감사하자.

 

(맺음) 인간의 육체는 계급이나 직분에 관계없이 그 근본이 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으니, 정말로 신령한 토기장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이나 천하게 쓰임 받는 것은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므로 불평해서는 안 된다. 오직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영광과 존귀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자.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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