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설교(39) 하나님께 대한 무지의 열심(롬 10:1-8)

관리자 승인 2020-12-21
         

 

 

(18:18)을 보면, 어떤 관원이 예수께 찾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는 기록이 나온다, 물론 이 관원은 영생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이런 질문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많은 이적과 교훈으로 널리 알려진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종교적 도덕성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여 칭찬을 받고 싶은 저의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물론 처음에는 관원이 예상한 대로 말씀하셨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18:20)”라고 말이다.

그래서 관원은 매우 밝은 표정으로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18:21)”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시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 관원이 계명을 지키지 않았음을 다음과 같이 교훈하신다. 네가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8:22)”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못 알고 있다. 즉 관원은 많은 계명을 잘 지키었지만, 거기에다가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오늘 본문 (10:1-8)의 말씀은 이 누가복음의 부자관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다시 풀어주고 있는데,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지의 열심에 대하여 알아 보자.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의 종교적 열심은 대단하다고 할 만큼 열정적인 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심과 철저한 의식 생활에서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도 안 되고, 밀 이삭을 비벼 먹어서도 안 되며, 병자가 누웠던 자리를 들고 가도 안 되며, 2km 이상 걸어도 안 될 정도로 철저하다.

그런데 이러한 율법에 대한 열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열심으로 오히려 하나님을 거스르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10:2-3)에서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증거한다. 그러면 하나님에 대한 유대인의 무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 보자.

 


 

1.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무지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 (18:9-14)을 보면,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등장한다. 바리새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와 함께 있는 세리와 비교하며, 자기 의를 내세우면서 그것을 자랑했다. 그러나 주께서는 바리새인보다 오히려 세리를 더 의롭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이고, 바리새인은 자기 의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도덕적으로 잘못이 있고, 서로 간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같이 세상의 도덕을 잘 지킨다고 해도,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의는 예수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스라엘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는 것만이 하나님의 의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세리처럼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자.

 

2. 계명의 참뜻을 모르는 무지이다.

예수님께 나아왔던 유대인의 관원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지켜왔던 계명과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 곧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말씀을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는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계명의 참뜻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계명에 대하여 차원 높게 가르쳐주고 있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13:8-10)의 말씀을 읽어 보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이 얼마나 깊으신 교훈인가? 그렇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결코 간음이나 살인이나 도둑질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이 많은 계명을 지켰다고 자부하는 부자 관원은 그 계명이 참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것이기에, 실상은 계명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도 말씀의 참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생명 없는 의식에 매여 스스로 속는 무지의 사람이 되기 쉽다.

 

3. 구원이 내게 가까운 것을 모르는 무지이다.

오늘 본문 중 (10:5-8)을 보면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내리려는 것이요 혹은 누가 무저갱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올리려는 것이라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자기 앞에 가까이 있는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불가능한 자신들의 방법으로 구원을 성취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미 모세의 글에 있었던 것을 바울 사도가 인용한 것이다. (30:12-14)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며 하늘에 있는 것도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니 누가 그곳에 가서 그 명령을 가지고 와 우리에게 들려주어 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마음에 있노라는 말씀이 증거한다.

그렇다. 구원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바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1)”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천국을 어떤 이상으로 알고, 구원을 우리의 노력이나 어떤 의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천국은 이미 내 속에 있어 벌써 육의 사람과 부단한 싸움이 계속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맺음)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바리새인처럼 은혜로 주신 구원을 외면하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게 된다. 그리고 유대인의 한 관원처럼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점검해 보자.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으니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혹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지는 않는가? 만약 지금도 이처럼 하나님에 대한 무지 속에서 행하는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말씀을 깊이 상고하자. 그리고 우리의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은 구원의 소식을 곳곳에 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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