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항일 독립유적지를 찾아서(러시아 연해주)

관리자 승인 2018-05-25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항일 독립유적지를 찾아서 : 우수리스크(독립운동가 이상설, 최재형), 끄라스키노(안중근의사)

지난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러시아 중국 일대의 항일 운동 유적지를 탐방하였다. 아래 사진의 이상설 (1870년~1917년) 선생의 기념비 연해주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기부금과 독립운동 기념단체들의 지원금으로 세워졌다. 이상설은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특사로 파견돼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폭로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념비가 세워진 이 곳 우수리스크 등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그는 "동지들은 합세하여 조국광복을 기필코 이룩하라. 나는 조국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니 어찌 고혼인들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랴. 내 몸과 유품은 모두 불태우고 그 재도 바다에 뿌린 후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최재형(1858~1920)선생은 러시아 항일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러시아로 건너간 뒤 큰 돈을 벌어, 그 돈으로 항일 투쟁조직을 만들고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를 도왔다.
안내판에 이런 글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집은 연해주의 대표적 항일독립운동가이며 진로한족중앙총회 명예회장으로 활동하였던 최재형선생이 1919년 부터 1920년 4월 일본헌병대에 의해 학살되기 전까지 거주하던 곳이다."

                         

    
                   
 


안중근(외 11인) 단지동맹기념비: 이 기념비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일어난 이토 히로부미 저격사건이 있기 전, 같은 해 3월 5일 (음력 2월 7일) 연추 지역(현 연해주 끄라스키노)에서 행해진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12인의 애국의사가 맺은 단지동맹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안중근 의사를 위시하여 김기룡, 강순기, 정원주, 박봉석, 류치홍, 조응순, 황병길, 백규삼, 김백춘, 김천화, 강창두 등12인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이 사건은 "열두 사람이 모여 조국 독립에 헌신 할 것을 다짐하며 자신의 왼 손 무명지를 잘라 그 피로 태극기 앞면에 대한독립이라 쓰고 대한독립만세 삼창을 한 후 하늘과 땅에 맹서하고 흩어졌다고"하여 '단지동맹'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하늘과 땅에 맹서했다는 뜻을 강조하여 '정천동맹'이라고도 부른다.
2001년 10월 18일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러시아 정부의 협조를 얻어 끄라스키노 외곽 쭈까노보 천변에 처음 단지동맹비 유허비를 세웠으나 이후 관리의 문제로 쭈가노보 마을 가까이로 이전하였다가 2011년 새로운 기념비와 공원을 조성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안내판의 일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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