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안희정

관리자 승인 2018-03-26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안희정

 


                                                                                                                                                                 
                                                                                                                                                              원주인터넷신문 나루터
                                                                                                                                                                 발행인 이상호 목사
 
                                                                    

내가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강물에 빠져 떠내려가던 나를 구해준 동네 형, 가난했던 시절 남동생의 심장 수술비가 없어서 쩔쩔매는 부모님께 달랑 차용증 하나 받고 선뜻 거액을 꾸어준 미장원 아주머니 등등 여러 명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작은 것 하나가 가슴에 심어지면 평생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우리 세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선생님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르는 듯 했다. 수업 태도가 불량하면 곡괭이 자루로 엉덩이를 때리는 것이 예사였고, 주일이 되어도 교회 다녀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당시 사회는 선생님들에게 대학입시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었다.

 

학교 측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신앙심 깊은 학생들이 몰래 교회를 다녀오는 날이면 사랑의 매를 훨씬 뛰어넘는 무차별적인 폭행이 가해졌다. 그래도 한 학생이 계속 교회를 다녀오자 담임선생님은 그 학생에게 ‘대학 포기 각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각서를 쓰면 교회 가는 것을 허락해 주겠다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당장 파면 당할 선생님이었겠지만. 결국 그 학생은 기꺼이 포기각서를 쓰고 교회를 다녔고, 자기가 쓴 각서대로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학생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도 그를 존경했고 그리워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 원주시청 신우회에서 설교할 기회를 가졌는데, 회중석에서 다른 회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바로 그 친구를 보게 되었다. 설교를 하는데 감동이 왔고, 그 자리에서 그 친구 얘기를 꺼냈다. 모두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대학을 포기하게 하셨지만 이 시대 젊은이들이 동경하는 공무원이 되게 하셨던 것이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의 다른 면을 본적도 없고 아는 바도 없지만 세상에 단호히 맞서 신앙의 길을 걸어 온 그 모습만큼은 존경한다.

 

요즘 온 나라가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에 대한 얘기로 가득 차 있다. 지난 19대 대선 ‘더불어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2위를 기록하였고, 앞으로 있을 20대 대선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를 수 있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탁한 정무비서에게 여러 번 성폭력을 휘둘렀고, 심지어 ‘미투 운동’이 두려운 나머지 정무비서를 불러내어 잘못을 시인한 자리에서도 또 다시 그 짓을 했다고 한다.

 

안희정의 이런 행동은 그가 속한 진보 진영이 끊임없이 추구해 온 ‘인권’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 입으로는 인권과 남녀평등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직위를 이용해 성폭력을 저지른 이중인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만나고 싶은 안희정은 그런 안희정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냈다. 한 번도 자녀에게 ‘공부 잘하라’고 말한 적도 없다. 그런 안희정을 만나고 싶다.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대안학교에 보내는 것이 正道이거나 잘한 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이 사회에서 그가 속한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논리와 같은 노선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치노선과는 달리 자식을 고액과외 시키고 일류대학과 유학을 목표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는 정치인이 다반사인 세상에서 안희정은 어떻게 그 욕구를 뿌리치고 자신의 노선대로 자식을 키울 수 있었는지, 그런 안희정을 만나고 싶다.

 

세상에서 위인(偉人)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구역질나는 면이 있다. 근래에 발견된 기록을 보면 이순신 장군도 권율 장군을 지극히 미워하고 갈등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가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어느 누구에게나 올바르고 선한 생활양식이 있다. 인생 전체를 모델 삼을 사람은 없지만, 그것을 여러 갈래로 쪼개어보면 그 어느 누구에게나 모델로 삼을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위인은 없지만 위인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사회나 인간의 어두운 면을 파헤쳐 반면교사로 삼는 것도 좋지만, 밝은 면을 더욱 높이 받들어 모델로 삼는 것은 더욱 유익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한 번 걸리면 무한정 돌팔매를 던지는 사회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는 ‘위인전’을 만들지 말고 보통 사람들의 ‘위대한 모습’들을 엮어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읽혀봄이 어떠할까, 생각해 본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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