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사과와 그 이해

관리자 승인 2018-04-03

한국의 베트남 참전에 대한 사과와 그 이해

    


                                                                                                                                
                                                                                                                            원주인터넷신문 나루터
                                                                                                                                                        발행인 이상호 목사

                                                                                               

베트남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3일 쩐 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였다. 이를 두고 ‘국가 차원에서 사죄했어야 했다’는 시민단체‧종교인‧학자들이 있는 반면, ‘베트남의 공산화 방지와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전체의 안전보장, 그리고 6‧25 동란 때 우리나라를 구해준 우방에 대한 보답으로 파견되어 전쟁을 수행하다 일어난 사건을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는 보수적 의견도 있다.

더군다나 베트남 파병으로 우리나라가 ‘조국 근대화’의 큰 에너지를 얻은 사실과 베트남 정부 측에서 오히려 ‘사과 안 해도 된다’며 만류한 일은 보수적 의견에 힘을 보태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1955년 10월 27일 수교한 한국과 남베트남은 1964년 8월 미국의 구축함이 북베트남의 어뢰정 공격을 받은 이른바 ‘통킹만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베트남 전쟁이 발발한 이후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되었다. 당시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요청에 따라 남베트남에 병력을 파견하기로 하고 국회의 의결을 거쳐 참전시켰다. 1964년 9월 11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 6개월 동안 연 31만 2,853명이 참전하여 혁혁한 전과를 세웠으나 미군의 철수 등으로 5,000여명의 전사자를 남긴 채 패전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베트남 종전 후 수십 년이 지난 김영삼 정권 때 ‘한국의 베트남전 참전은 유감’이라는 한승주 외무부장관의 사과를 필두로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는 불행한 전쟁(베트남전쟁)에 참여해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데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이번 문재인 대통령도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의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베트남을 방문하거나 떠올릴 때마다 유감을 표명하거나 사과를 하는 가장 큰 원인은 우리가 총부리를 겨눴던 북베트남이 통일 베트남을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지원한 남베트남이 승리를 거두고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민간인 학살과 같은 몇몇 온당치 못했던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혈맹임을 자처하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러나 현 통일 베트남은 경제 개방과 시장경제의 자본주의를 도입하여 지향하고 있지만 여전히 공산주의의 골격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과 총부리를 겨누고 심지어 일부 민간인 학살까지 자행했던 우리로서는 외교나 경제교류를 진행함에 있어서 우리 스스로 계면 쩍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것이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베트남 정부가 요구하지도 않는 사과를 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국 정치 지도자들의 사과와 베트남 정부의 만류는 아이러니컬한 면이 있지만 아름다운 일이다. “사과하라”, “사과할 일이 없다”고 각을 세우는 한‧일 관계와 비교해 볼 때 한‧베트남의 관계는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베트남이 한국에 대해 앙금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베트남 정부가 그들의 필요에 의하여 정책적으로 유도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국민들의 저변에 깔린 마음과 시각이 호의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동경하고 한국인을 사랑하고 한류를 즐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외국팀을 상대로 골을 넣을 때마다 마치 자기네 나라가 골을 넣은 것처럼 벌떡벌떡 일어서며 환호성을 질렀던 베트남 국민들의 모습, 한국의 과학기술과 기업의 성공사례들을 벤치마킹 하며 한국인을 따라가려는 열정, 그리고 한류 문화 등이 이를 증명한다.

 

베트남이 이처럼 우리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한국이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일본처럼 제국주의적이지 않고 크게 성공을 이룬 나라’라는 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은 이미 과거 북베트남만의 베트남이 아니다. 개방과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데서 보여주듯 이미 국민들의 마음속엔 자유민주주의가 태동하고 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 맞섰던 한국이 그렇게 원수로만 여겨질리 없다.

 

또한 베트남 참전 당시 일부에서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이 국가 차원이나 군 수뇌부의 작전 차원이 아니었다는 것이 한국에 대한 베트남 국민들의 마음을 비호의적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처럼 국가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국가 차원에서 침공한 것도 아니고, 일본군을 위하여 동원된 위안부처럼 군 수뇌부 차원에서 민간인을 유린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베트남인들은 호찌민 시의 ‘전쟁 증적(證跡) 박물관’에 전쟁의 참상을 낱낱이 새겨놓고 그 전시물을 보며 눈물을 흘릴지라도 ‘아픈 역사와 미래에 대한 각오’일 뿐 반한‧반미 감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일부 온당치 못했던 사건들은 인류 모든 전쟁의 역사에서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이었다. 더군다나 베트남전은 피아가 구분되지 않은 전선(戰線) 없는 전선(戰線)으로 진행되었고, 실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한 베트콩들도 많았기 때문에 전쟁 수행에 많은 애로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고, 그래도 우리는 사과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베트남에 대하여 다른 나라들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우리의 군홧발이 그들의 국토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괜찮다’고 할 때 우리는 ‘사과’하고, 그들이 배우고자 할 때 우리는 존경심을 표해야 한다.

아울러 한편으로는 조국의 명령에 이역만리(異域萬里)에서 피와 땀을 흘린 우리 군인들에게 명예와 물질적 보상이 끊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사고의 권한이 없고 순종의 의무만이 주어진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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