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휘의 보편성과 개별성
이충우 (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국어의 특성으로 ‘주어가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고 기술한 국어학 개론서들이 있는데 구어라면 ‘주어’가 생략되는 상황(화자와 청자가 주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경우)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것은 당연한 주어 생략 규칙으로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주어가 항상 나타난다.’고 기술되는 영어도 명령어나, 대화 등에서는 주어가 있는 것이 어색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구어에서의 주어 생략 현상은 ‘국어의 특성’이 아니라 대부분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보편적인 현상이다. 국어 작문에서 주술 구조를 엄격히 교육하지 못한 결과로 ‘문어에서 주어 생략이 일어나는 경우’와 구어의 자연스런 성분 생략을 영어의 문어 문법에 비교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언어는 단어마다 1:1로 대응하는 게 아니다. 한 언어에는 있는데 다른 언어에는 이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해당되는 단어가 없는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단어를 만들어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다른 말로 대체하여 사용하기 때문이다. 한 언어의 단어가 구나 절로 사용될 수도 있고, 이에 해당하는 단어에 대한 개념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의 보편적인 성격은 언중이 인식하고 그 인식한 내용 의미를 언어 형식, 단어로 만들어 사용하느냐, 그렇지 않고 풀어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 뿐이다. 이러한 언어의 보편적인 성격인 ‘사람은 사물에 생각이 미치면 그에 대해 표현할 어를 만든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면 대부분의 언어가 다른 언어와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특수한 집단에서만 필요한 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휘의 차이가 나는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언어는 개별적인 것보다 보편적인 게 많다고 믿는 필자는 언어의 보편성을 더 강조하여 어휘에 관해 기술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모든 언어는 보편성과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휘 기술을 보편성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면 보편성이 많아 보이고 개별성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면 개별성이 드러나 보인다. 이 때 국어교육에서는 개별성에 중점을 두고 기술하는 경우 그 개별성을 어디까지 개별성이라고 보느냐에 따라 보편성과 개별성을 구별하는 기준에 혼동이 생긴다. 그런데 개별성을 강조하다 보면 보편성을 잊기 쉽다. 따라서 보편성과 개별성을 함께 기술해야 한다. 필자는 개별성이라는 기술보다 비교 대상이 되는 어와의 차이라는 기술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언어가 완전히 그 언어에만 독특한 양상으로 어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어느 말도 홀로 갖는 특성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국어는 다른 언어와 달리 000하다’는 기술을 한다. 이런 기술은 일부 우리가 아는 언어와의 차이일 뿐 모든 언어와의 차이는 아닐 수 있다는 현실을 도외시한 기술일 뿐이다. 따라서 ‘국어는 이러이러한 현상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있는 언어로는 00어, 00어 등이 있고, 00어, 00어 같은 경우는 이와는 달리 00한 현상이 나타난다.’는 식의 기술이 필요하다.
요약하면 국어의 개별성이나 특수성이라는 기술은 수많은 언어 중에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언어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국어에만 있는 현상’이라든가 ‘국어에는 이러이러한 특성이 있다.’는 기술은 적절하지 않다. 따라서 ‘국어의 특성’은 ‘국어에만 특수한 것은 아닐 것이며, 우리가 아는 언어에 따라서는 이와는 다른 성질도 있다.’로 기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출처: 이충우(2015), 국어 문법의 교육과 현상, 박이정
<사진 출처: 픽사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