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시간 만에 끝난 테니스 경기

관리자 승인 2018-02-26

여덟 시간 만에 끝난 테니스 경기

패장은 술로 곤드레만드레
                                                                                                                                    

20년 전 강원도 양구 테니스장에서는 전국소년체전에 내보낼 초등학교 여자강원도대표를 뽑는 선발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도 도내에는 초등학교 여자테니스 팀이 몇 개 있었으나 대부분 동아리 수준이었다. 결국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는 양구의 oo초등학교와 인제의 oo초등학교 선수들이 2단 1복의 결승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전날 열린 단식에선 각각 두 명이 나서서 승패를 주고받아 1:1이 된 상황이었다. 이제 마지막 복식 경기에서 이기는 팀이 강원도 대표로 전국소년체전에 출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승자 팀이 속한 학교는 도교육청으로부터 연 수천만 원의 훈련비(코치 급료 포함)와 전국대회 출전 경비를 지원받게 되고 담당체육선생님(감독)은 연구점수를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니 아이들의 경기지만 양 학교는 사활을 건 숙명의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 당시에는 어느 종목을 막론하고 도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는 팀이 예산부족으로 해체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오전 10시, 드디어 복식 경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양 선수들은 강한 공격을 하지 않고 계속하여 로빙 볼(높게 곡선을 그리며 나가는 볼)을 올리기 시작했다. 공격하다가 실수할까봐 양측 코치진들이 선수들에게 주문한 플레이 방법이었다. 높게 날아 온 로빙 볼이 땅에 떨어지면 다시 높게 튀어 오르기 때문에 키가 작은 초등학교 선수들은 그 볼을 스매싱하기 힘들다. 그래서 다시 로빙 볼로 상대에게 넘겨주면 또다시 로빙 볼이 넘어 올 수밖에 없다.

 

많은 훈련을 감당한 선수들이 스매싱이나 발리 등 적절한 공격을 구사하지 않고 볼을 들어올리기만 하니 양측 모두 점수를 얻거나 잃지 아니했다. 한 번 서브를 넣으면 2,30분이나 공이 오간 후에 실수가 나오는 정도니 좀처럼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후 6시, 어둑어둑 땅거미가 밀려올 즈음 경기장은 조용해지고 있었다. 오전 10시에 응원 나왔던 수백 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 기타 관계자들 대부분이 지쳐서 자리를 떴다. 무려 여덟 시간 동안 심판도 세 번이나 교체되었고 오직 선수들만 계속 공을 올리고 있었다. 대회 관계자들 사이에선 경기를 중단하고 내일 계속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결국 인제의 oo초등학교 코치가 결단을 내리고 선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야! 그만 올리고 공격해!”

8시간 동안 겨우 2/3 정도 진행되고 있던 경기가 순식간에 인제 oo초등학교의 승리로 끝났다. 그날 밤 패장인 양구 oo초등학교 코치는 술이 곤드레만드레 되어 거리를 누볐고, 예산 부족으로 해고되는 운명을 맞았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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