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와 ‘쌀’
이충우 (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벼농사에서 모판에 볍씨를 뿌려 어린 싹이 자라는 경우 이 어린 모[苗]를 우리는 다른 작물의 모와 구분하기 위해 ‘볏모’라 부르고 그럴 필요가 없을 때에는 ‘모’라고 부른다. 남자 중학교나, 남자 고등학교를 그냥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부르지만 특별히 남녀 공학인 중학교나 고등학교와 구별하기 위해서 남학교로 부르는 것과 같다. 이때 ‘남학교’의 경우는 ‘남자’를 생략하고 ‘학교’를 사용하지만 여학교는 항상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처럼 ‘여자’를 명시한다. 가장 일반적이고 중심적인 명칭의 경우에는 다른 특수한 경우와는 달리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다. 이러한 현상은 곡식과 관련한 용어에도 나타난다.
‘모, 쌀’의 경우도 ‘벼의 어린 모’를 ‘볏모’라 하지 않고 ‘모’라 하고, 다른 작물의 모는 작물의 명칭을 사용하여 ‘들깻모, 오잇모, 고춧모’ 등으로 명칭을 사용하고, 이러한 언어의 사용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 언중은 ‘모, 쌀’이 벼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고, 따라서 ‘모, 쌀’의 중심 의미인 ‘옮겨심기[移植] 위한 어린 식물[幼苗]’이나, ‘껍질을 벗긴 곡식의 알맹이’가 주변 의미로 변한다. 중심 의미가 주변 의미로, 주변 의미가 중심 의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언중은 서서히 원래의 중심 의미에 대해 잊게 된다. 이런 의미 변화 현상은 의미의 일반화(확대)나 의미의 특수화(축소) 현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모’의 주변 의미인 ‘볏모’와 ‘쌀’의 주변 의미인 ‘입쌀’은 ‘모, 쌀’의 중심 의미로 변하고, 중심 의미인 ‘옮겨심기[移植] 위한 어린 식물[幼苗]’이나, ‘껍질을 벗긴 곡식의 알맹이’는 주변 의미로 밀려나는 것이다.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사전이나 교과서 등에 의해서 ‘모, 쌀’의 중심 의미를 ‘벼’ 관련 명칭으로 알지만 농사짓는 사람들은 필요할 경우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 언어는 형태도 변하고 의미도 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많아 남학생만 다니는 학교나 남녀 공학의 학교를 그냥 ‘학교’로,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는 ‘여학교’라 불렀다.
출처: 이충우(2015), 국어 문법의 교육과 현상, 박이정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