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 모든 것 위에 도덕성을

관리자 승인 2018-04-10

이 모든 것 위에 도덕성을


                                                                                                                    
                                                                                                                   큰 빛 교회 유승관 목사


“한국갤럽은 2017년 9-10월 전국 만 19-69세 남녀 8,000명에게 중앙정부, 의료기관 등 17개 사회 각 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했는데, 종교기관은 2016년 45%에서 2017년 41%로 4% 떨어졌다.” 이것은 모 신문의 머리기사입니다. 물론 모든 종교기관을 총 망라한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개신교는 이미 자체 조사에서도 이런 정도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드러난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조사 결과는 개신교의 신뢰도를 더 확실하게 입증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신뢰도는 도덕성에 의하여 판가름 납니다. 자기 신분이나 위상에 부합하는 뚜렷한 도덕성을 보여줄 때 그의 신뢰도는 향상됩니다. 반면 자기의 직무에 요구되는 도덕성을 보여주지 못하면 부정직하게 보여 그의 신뢰도는 추락 합니다. 종교기관이 일반기관을 넘어서지 못하는 신뢰도를 보이는 것은 구성원들의 도덕성이 일반기관 종사자들보다 뛰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신뢰도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윤리(도덕적 삶을 제공하는 원리)와 도덕성(마땅한 도리)에 의해 결정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신앙인에게 요구하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깨끗한 도덕성을 발휘 하는 사람이어야 되겠습니다. 기독교 신자인 전직 대통령의 구속도 도덕성 문제가 아닙니까?


신자에게 도덕성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도덕적 통치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셨을 때에 도덕적 율법에서 떠남 없이 항상 순종할 의무를 지우셨습니다. 도덕률은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며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본성상 도덕적 지배자시며, 사람의 본성이 도덕적 행위자인데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입니다. 죄 없는 상태에서 이 도덕률의 본질적 원칙들은 바른 인간성의 구조에 계시되었으며, 지금도 이방인들까지도 핑계할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분명 합니다(롬2:14-15). 타락 전에는 이렇게 계시된 도덕적 율법이 하나님과의 관계로 바르게 인도 했는데, 타락 후에는 불충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율법을 더 명백하게 계시하셔서 가르쳐 주십니다.』(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9장 하나님의 율법)


청교도 신앙의 완성자라는 조나단 에드워드는 “신앙 감정론”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도덕적(공유적) 속성과 본성적(비공유적) 속성으로 나눕니다. 전자는 의로우심, 진실하심, 신실하심, 선하심 입니다. 후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하는 것으로 전능하심, 전지하심, 영원하심, 편재하심 그리고 장엄하고 두려운 위엄을 뜻합니다. 두 속성은 서로를 전제로 합니다. 도덕적 탁월성은 본성적인 탁월성을 결정하는 탁월성입니다. 본성적 특성들은 그것들이 도덕적 탁월성과 연합되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탁월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도덕성이 없는 능력과 지식은 어느 존재도 아름답게 만들지 못하고 오히려 더 혐오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능력과 지식이 도덕성과 연합되면 그것들은 더 아름다워 진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선택된 천사들”은 그들이 지닌 능력과 지식 때문에 더욱 영광스러워 보입니다. 이런 본성적 완전성들은 그들의 도덕적 탁월성이 있기 때문에 돋보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귀들”은 매우 강한 힘을 가졌고 대단한 본성적 능력과 지식을 가졌지만 아름답지 않습니다. 마귀들은 더욱 두려운 존재가 되고 더 호감을 주는 존재가 아닌 더 혐오스러운 존재인데 도덕적 탁월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지성적 존재들이 도덕성을 가지면 그의 모든 본성적 완전성을 아름답게 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이러한 통찰은, 도덕적 성품이 존재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아무리 본성적으로 위대해도 도덕적인 본성에 결함이 있다면 존재에 흠이 생깁니다. 신뢰 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그런데 도덕적 본성이 완전하시므로 그의 본체와 영광은 더욱 아름답고 위대해 보이며 절대 신뢰감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은 도덕성(윤리의식)이 결여되면 그가 지닌 자질과 능력이 아무리 탁월해도 신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혐오감을 일으킵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나요? 명문대 출신으로 탁월한 지성을 갖추고 남들을 앞서는 판단력과 창의성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교회정치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남들이 부러워 할 만큼 모든 것을 갖추고 왕성한 목회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우월함이 공회를 유익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공적해악자로 만드는 것은 윤리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이 부족하니까 본래 지닌 우수한 것들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에 오용하여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한국교회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우수한 영적자원이 많습니다. 성경중심의 보수신앙의 기초위에 세워졌고, 세계에서 가장 기도를 많이 하는 나라입니다. 선교의 열정은 얼마나 대단한지 2만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최근 몇 년 동안은 미국 다음으로 많이 보내는 나라입니다. 세계 20대 교회 중에 2/3가 한국에 있다지요. 또 내적으로는 대부분의 복지기관을 개신교에서 운영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한국교회의 우수한 점이 있어요. 그런데 종교 신뢰도를 조사하면 항상 꼴찌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칭찬받을 만한 점이 많은데 오히려 욕을 먹는 것은 도덕성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이미 확인했듯이 도덕적인 부분에 결함이 있으면 자체에 아무리 탁월한 요소를 지니고 있어도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윤리의식 회복이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개신교는 그냥 성경을 따라가면 최고의 도덕성을 발휘하여 가장 신뢰를 받는 종교가 됩니다. 그런데 꼴찌라는 것은 전혀 성경의 윤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최고의 윤리기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천을 하지 않으니 더 문제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제쳐두고 변죽만 울리는 신앙을 청산하고 우선순위를 바르게 확립해야 되겠습니다.


도덕적인 실천은 신자들을 외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단장을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는 명령도 신자들을 세상과 구별시켜주며 영화로운 신자가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도덕성과 거룩 명령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실천으로 들어가면 이 둘은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즉, 도덕적인 삶과 거룩한 삶은 동의어이며 같은 것임이 드러납니다. 이것의 원천은 모두 성경입니다. 주야로 묵상하면 성경의 원리와 정신이 우리의 영혼에 새겨집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도덕적인 삶이 가능하여 거룩한 신자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도덕성은 신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덕목들 중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성품으로 성경이 원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거룩 명령은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삶을 순종의 의무로 지워 주셨습니다. 이를 실천할 때 신자들의 삶을 통하여 주의 영광과 위대하심이 세상에 전파 됩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세상으로 하여금 신뢰를 받게 합니다. 도덕성이 풍부한 신자가 되어 주님과 세상으로부터 신뢰 받으며, 소명을 다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을 누리시는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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