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주의 은혜로만 강해질 수 있다

관리자 승인 2018-04-21

주의 은혜로만 강해질 수 있다

 



                                                                                                                                                             
                                                                                                                                               큰 빛 교회 유승관 목사

모 기업 오너 가족들의 갑질로 대한민국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갑질보다 미친짓이라고 해야 옳다고 봅니다. 그들의 소행이 담긴 음성파일과 제보자들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정신병자가 하는 짓이지 어떻게 정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다 제 종으로 보이고 미친 놈이나 거지로 보이는데 정신상태가 잘못됐다고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사회의 안전을 위해서 이런 환자는 격리 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입니다. 많은 재산이 그들을 강하게 한 것이 아니라 미치게 만들었습니다. 신자들이여! 외형과 물질로 강해지려는 사람들은 이렇게 미쳐 버릴 수 있으니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주님의 경고로 들을귀 있는 자들은 들으시길 바랍니다.

 

이삭이 블레셋 지역에 머물때 여러번 쫓겨납니다(창26:12-33). 위경중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점점 더 강해지게 하셨습니다. 위기를 당할수록 여호와의 도움을 더 간절하게 간구했고 하나님은 거기에 응답하셔서 전화위복으로 변하는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다(28상,29하). 이것을 목도 하면서 방해자들은 적어도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삭에게 한 악행에 대하여 화를 내리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생긴 것입니다. 또 능력있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이삭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보복을 할 것 같다는 위기감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껏 위축된 상태로 이삭에게 와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합니다(29).

 

이삭의 성격은 수동적 능동형 입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는 대부분 양보하고 손해를 감수합니다. 당해도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그 일을 맡기고 아픔을 삭이고 달래는 방법을 찾는 수동형 입니다. 그러나 신앙에 있어서는 상당히 능동적이며 적극적 입니다. 흉년으로 인해 남향할 때 애굽으로 가지 말고 가나안에 머무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다시 브엘세바로 돌아옵니다(25). 위기가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즉시 주의 손에 넘겨 드리는 능동형 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이삭을 부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는 것을 방해자들이 목도하자 두려움이 생겨 기세가 꺽여 숙이고 들어왔습니다. 이삭이 상대에게 권위가 있고 강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은 순종의 삶에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삭의 행동에서 주님의 모습을 비추어 주기도 합니다. 주님이 구주요 만왕의 왕이되신 것은 성부께서 이루라고 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는 순종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원수들이 무릎을 그에게 꿇게 하시고, 모든 입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셨습니다. 스스로 권위와 영광을 차지 하시기 위해 그의 능력을 행사하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뜻을 다루어 드렸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십자가의 구원의 성취가 성부의 뜻인 것을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하시고 그 고난의 잔 까지 다 마시는 순종을 드렸기 때문에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이로보아 우리가 강해지고 권위가 나타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뜻에 순종적인 삶을 드릴 때 주시는 은혜로만 되는 것임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설득의 심리학”이라는 책에서는 설득을 위해 사용되는 여섯가지 법칙을 가르쳐 주는데 그중에 권위의 법칙이 있습니다. 권위에는 무조건적으로 맹종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보여줍니다. 그래서 권위로 설복시키기 위해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들을 잘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권위의 상징물은 첫째, 직함 입니다. 두 번째, 옷 차림 입니다. 세 번째, 자동차 입니다. 이러한 것은 지위와 힘을 대변해주는 상징들이기 때문에 이런 것으로 권위를 나타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에 속지 않으려면 실제 그런 사람인지 잘 확인 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의 전문적인 능력을 보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신자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성경의 원리를 배격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은 자기가 세속에 물들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우스운 행위라는 것을 확실히 아시기 바랍니다.

 

확언컨대 일반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그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성부의 뜻을 순종하기 위해 말구유에 누우시고, 가난하고 병든자와 소외된자들의 친구가 되시고 죄인들의 친구로 사셨던 예수는 이들에게 부끄러운 분입니다. 땅에는 머리둘 곳 한평도 없고 남루한 차림에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고생만한 캐릭터로 기피의 대상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주를 위해 비천에 처하는 것이 부끄러워 절대로 예수의 삶을 따르지 못하고 자랑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예수의 뒤를 따라 그의 고난을 자기의 육체에 채우려는 사람들에게 조소를 보냅니다. 실패한 자, 무능력한 자, 나는 저렇게 안 산다! 이들은 일반인들의 방식으로 자기의 지위와 이름을 내려 합니다. 신앙의 세속화 이방종교화가 도를 넘은 행위 입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28상).....너는 여호와께 복은 받은 자니라(29하).”

 

이삭이 대적들에게 강하고 권위 있게 보여 먼저 화해를 요청하도록 한 것은 스스로 된 것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속에서도 변함없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순종하는 삶을 드릴 때 거기에 임했던 주의 은혜가 이삭을 위엄있게 만들었습니다. 이삭에게 주의 은혜가 임하여 대적들에게 능력있게 보인 것입니다. 교회와 신자들이 강해져서 세상이 두려워 하게 되는 것은 주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주의 권위와 영광 때문입니다. 이 외의 것으로 강해지려는 시도는 거미줄을 잡고 있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강한자가 되고 십습니까? 모든 사람들에게 권위를 보여주고 싶습니까? 성경은 오직 주의 말씀과 주의 소명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이 방식을 따라 세상이 감당 할 수 없는 강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속의 방식을 던져버리고 주께서 충성스러운 자에게 주시는 은혜로 강한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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