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4.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8-06-26

 

너무 예쁘다
                                                                    이충우 (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사람 중에는 너무 예쁘다.’너무 맛있다.’와 같은 너무+긍정적 표현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은 너무 예쁘다.’는 적절하지 않고, “아주 예쁘다.”라거나 매우 맛있다.”와 같이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너무지나치다(넘치다)’의 의미이고, 긍정적인 것은 정도가 클수록 좋은 것이니 지나치거나 넘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너무의 의미는 일정한 기준에 지나치도록 정도가 강함을 나타내는 말임을 아래 <부엌 언니>에서 알 수 있는데 넘다()’에서 파생한 부사다.

 

그러나 <부엌 언니>가 구비해야 할 조건은 너무나 여러 가지였다. 첫째로 나이는 열일곱에서 열아홉 사이라야 한다. 둘째로 몸이 너무 가냘파도 못 쓰지만 덩치가 너무 커도 못 쓴다. 덩치가 큰 놈은 반드시 동작이 느릴 뿐만 아니라 어쩐지 만만치가 않다(김태길, 부엌 언니).

 

예쁜 정도가 심한 여성[傾國之色]에 혹한 임금이 나랏일을 등한시하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음식의 맛있는 정도가 지나쳐서(너무 맛있어서) 자꾸 많이 먹어서 비만이 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며, 지나치게 공부를 잘하기 때문에 교사가 가르치기 힘든 청출어람(靑出於藍)인 학생이 있기도 하다. 그럴 때 우리는 너무 예쁘다, 너무 맛있다, 너무 잘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국어학자들은 너무 예쁘다.’와 같은 정도부사(: 너무, 아주)+동사정도부사+상태부사(: 많이, 빨리, 높이)+동사로 보고 정도부사+동사상태부사가 생략된 것이라 한다. 그래서 너무 먹는다.’너무 많이 먹는다.’너무 자주 먹는다.’와 같이 표현하여야 한다고 보아 많이’, ‘자주의 생략으로 정도 부사의 동사 수식을 설명하지만 너무 먹는다.’먹는 정도가 지나치게 강함이고, ‘너무 많이 먹는다.’많이 먹는 정도가 지나치게 강함을 나타낸다. 따라서 생략으로 처리할 수 없다. 다만 너무 많이 먹는다.’너무 자주 먹는다.’와 구별될 수 있고 너무 먹는다.’는 상황에 의해 자주, 많이를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생략으로 보는 연구에서는 너무 먹는다.’많이, 자주등 여러 상황 중 어느 것을 나타내는지 알 수 없어 문의 성립에 의문을 제기하고 상태 부사가 생략되었다고 보았다. 따라서 정도 부사의 동사 수식(정도부사+동사)정도 부사는 동사를 수식할 수 없으나 상태 부사가 생략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라 기술했다. 그러나 언어는 상황과 의미 맥락에 의해 이해되는 것이다. ‘많이, 자주를 보충해도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 어떻게등은 모른다. 말이란 의사소통의 필요에 따라 더 많은 단어가 첨가되거나 생략된다.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 문법이라면 의사소통 상황을 무시하고 특정 언어 요소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것은 문법적 허구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기준에 지나치게 먹는다.’는 것은 기준에 지나치게 많이 먹는다.’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는 너무 많이를 동의성의 중복으로 볼 수 있다. 동의성의 중복은 언어 경제 현상(필자는 문장이 길어지더라도 의사소통 장애로 중복하여 표현하지 않는 경우보다 표현이 짧아지는 경우를 언어 경제 현상으로 처리한다.)으로 보다 분명하게 의미를 전달하여, 여러 번 반복 전달하거나 오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동의 중복 표현은 날 일기 사납고 바람 풍세 사나운데, 늙은 노인이 긴 장죽을 물고와 같은 것이다. 정도 부사의 의미가 정도의 강함을 나타내고 있을 때, 그 다음에 많이, 오래정도가 강함을 나타내는 상태 부사의 쓰임도 동의성 중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너무 조금 먹는다.’의 경우는 너무 먹는다.’고 말하지 않고 조금을 나타내서 사용한다. 이 때 너무조금을 꾸며 정도에 모자람을 나타낸다.

 

언어 표현의 적절성(문법에 맞는 언어 표현)은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적절하다고 언중(言衆, 말하는 사람들)이 판단하는 것이지 국어학자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국어학자는 적절한 언중의 적절한 판단을 정리할 뿐이다.

 

* ‘이충우(2006), 국어 문법의 교육과 연구, 역락에서 발췌함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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