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15.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8-06-27

고유어 사랑하기와 언어 현실
                                                                    이충우 (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우리말을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우리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혼종어(고유어와 한자어가 섞이거나 외래어와 고유어가 섞이듯 어원이 다른 언어가 섞여 이루어진 말. : 이삿짐, 버스표, 주차파파라치 등)를 통틀어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순수한 우리 고유의 언어라고 보이는 고유어를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이 우리말 사랑의 방법으로 한자어나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어 쓰자.’거나 방언이나 비속어를 표준어나 점잖은 말로 바꾸어 쓰자.’는 주장은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고유어는 우리 국어 어휘 중 대부분이 한자어임과 수많은 외래어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볼 때 고유어만으로는 원활한 언어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외래어도 한자어도 우리말임을 애써 무시하려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느 나라나 여러 다른 언어가 섞여서 그 나라의 언어가 된다. 다음으로 외래어나 비속어를 고유어로 바꾸거나 순화된 점잖은 말로 바꾸자는 것은 외래어도 비속어도 언어생활에 필요하고 욕을 해야 할 때는 욕설도 훌륭한 의사소통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심한 욕설이라도 그 욕설을 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최선의 언어 선택이기 때문이다. 언어 선택은 언중이 필요한 대로 선택하는 것이 의사소통의 효용이 크다.

 

한 때 정부는 국어 순화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강제로 한자어나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게 하여 넘보라살[紫外線], 구석차기[corner kick], 찬피동물[變溫動物]’ 등 어색한 말을 만들어 강요하다가 포기한 적이 있다. 이는 언중은 자신들이 사용하기 편한 언어를 사용한다는 언어의 현실을 도외시한 정책의 실패 사례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언어정책을 강요해서 성공한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 유신정권의 국어 순화 운동도 실패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관계자가 국어 생활에서의 영어 관련 문제로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언어생활을 강제한다면 그 저항이 만만치 않고 결과는 정책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북한이 말 다듬기 운동을 하여 외래어나 한자어를 순수한 고유어로 바꾸어 사용하기에 주체성이 강하고 우리도 이를 본받아서 고유어를 많이 쓰자고 주장하는 소위 전문가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북한에서 남한을 방문한 고위 인사가 호텔에서 얼음보숭이[아이스크림]’을 달랐다고 언론이 대서특필까지 하였다. 그런데 얼음보숭이는 우리나라의 아내무섬장이[공처가], 날틀이[비행기]’와 같은 말로 실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었던 것이다. 북한에서 발행한 사전이나 어휘 분석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 말이며, 그들도 아이스크림이란 외래어를 사용한다. ‘조선어빈도수사전(1993, 과학백과사전출판사, 평양종합인쇄공장 인쇄)’이나 조선말 사전에는 얼음보숭이는 없고 아이스크림만 있다. 북한의 조선말 사전(1990, 과학원출판사)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과학 문화 연구소 언어 문화 연구소 사전 연구실 * 원서의 표기대로 띄어쓰기함)’에서 편찬한 사전인데 여기에도 얼음보숭이는 없고 아이스표제어 밑에 아이스 크림, 아이스 캔디, 아이스 케이크, 아이스 호키(ice hockey)’가 등재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 사전 편찬에 나타난 고유어, 한자어, (서양)외래어의 사용 현실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이며, 외래어 사용은 어떠한지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도 없이 닭공장, 새벽별보기 운동 등만 보고 대부분의 한자어나 외래어가 고유어로 다듬어졌다고 주장할 순 없다. 우리도 동아리, 먹거리 등일부 고유어로 바뀐 말이 있다. 북한의 말 다듬기도 우리나라의 국어순화운동도 시도는 있었지만 그 결과는 미미하다.

 

고유어가 중요한 것과 고유어가 아닌 말을 고유어로 바꾸어 쓴다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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