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와 고양이는 억울하다.
이충우 (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괴발개발’은 ‘고양이의 발과 개의 발이라는 뜻으로, 글씨를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써 놓은 모양을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이다. 고양이와 개의 발자국이 가지런하지 않고 질서가 없기 때문에 정연하지 않게 써 놓은 글씨를 괴와 개의 발자국에 비추어 ‘괴발개발 쓴 글씨’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 따라서는 이 말에서 ‘괴’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괴’는 지금은 사어(死語)나 고어(古語) 취급을 받지만 아직까지는 일부 지방에서는 사용되고 있는데 국어사전에서는 방언으로 취급하고 있다. ‘고양이’의 옛말[고어]이거나 죽은말[사어]이 아닌 현재 쓰이는 경우를 특정 지방에서만 쓰이는 말인 방언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우리말에는 지소접미사가 있다. 작거나 적은 것을 나타내는 접미사이니, 이들 접미사가 붙은 말은 작거나 적은 것을 가리키거나 원래보다 낮추어 부르는 말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지소접미사를 붙여 짐승의 새끼를 나타내거나 대상 사물을 낮추어 말할 때 사용한다.
짐승을 나타내는 지소 접미사에는 ‘아리, 아지, 아기, 앙이 등’이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소 - 송아지, 말 – 망아지, 개 – 강아지 등’에서 접미사 ‘–아지’가 붙었음을 본다. 그런데 돼지나 고양이는 성체를 나타내는 말과 어린 것을 나타내는 말이 같기 때문에 지소접미사가 붙었다는 것을 알아채기 쉽지 않다. 돼지가 ‘돝+아지’이고 고양이가 ‘괴+앙이’임을 이해한다면 다 자란 돼지나 고양이는 ‘돝’과 ‘괴’임을 알 수 있다.
돼지(-아지), 고양이(-앙이)의 입장에서는 새끼가 아닌 어미에게도 지소접미사 ‘–아지, -아리’가 붙으니 다 자란 짐승(성체)이면서도 어린 짐승(새끼) 대접을 받으니 억울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가 상대를 욕하거나 낮추어 부를 때 ‘00새끼’라 하거나 ‘-지소접미사’를 붙이니 말이다. 우리 신체를 나타내는 말 ‘배, 코, 귀 등’에 지소접미사를 붙이면 비속어가 되는 현상을 생각하면 돼지와 고양이의 억울함을 떠 올릴 수 있을까? 더구나 돼지와 고양이의 새끼들은 새끼를 나타내는 말 ‘-아지, -앙이’ 다음에 다시 ‘새끼’라는 말이 덧붙어서 ‘돼지새끼, 고양이새끼’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끼’를 욕으로도 사용한다니 그들의 새끼는 이유 없이 ‘새끼’라는 욕을 먹는다.
돼지와 고양이는 ‘돝’과 ‘괴’로 불리길 원하고 새끼들만 돼지와 고양이로 불러달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돼지와 고양이는 억울하다. 다 자란 짐승이 되어서도 덜 자란 짐승으로, 욕먹는 짐승으로 인간들에게 불리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