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여자들을 시집살이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세종이라니

관리자 승인 2018-09-11

고구려 시대에는 남자가 여자 집에 장가를 가서 사위집을 짓고 살다가 아들을 낳아 장성하면 본가로 돌아왔다(삼국지위서 동이전). 고려시대 남자들도 처가살이를 하다가 자녀가 장성한 후에야 돌아왔다. 조선시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태종 이방원도 처가살이를 하면서 양녕을 낳아 키웠다.

           

그러나 이 천년풍속이 조선의 개국공신 신진사대부들에겐 눈엣가시였다. 정도전은 그의 저서 삼봉집에서 남녀 간에 구별이 있은 후에야 만물이 편안해 진다. 남자가 처가살이를 하게 되면 무지한 부인이 자기 부모의 사랑을 믿고 남편을 멸시하는 경우가 없지 않으며, 교만과 질투심이 날로 자라나 남편과 반목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송나라 유학자 주희가 만든 주자가례(朱子家禮)였다. 조선의 신진사대부들은 이 주자가례를 친영례(親迎禮: 신랑이 신부를 맞이해 시댁으로 데려오는 예법)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은 친영례(親迎禮)를 전격 실시하였고, 16C 후반 양반집들은 처가살이를 청산하고 시집살이로 풍속을 바꾸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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