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규 목사 로마서 설교(47) 행복의 탄성(롬 11:33-36)

관리자 승인 2023-08-02

  만약 금광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평생을 캐낼 수 있을 만큼 큰 금맥을 발견한다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탄성을 지를 것이다. 성경에도 이처럼 큰 행복을 발견한 것으로 비유되는 말씀이 있다.

  (13:44-46)을 보면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 비유는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큰 행복을 비유한 말씀이다.

  오늘 본문의 바울 사도 또한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말씀하던 중, 그 크신 은혜의 절정을 느낌으로서 큰 기쁨과 감격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라고 말이다.

  그리고 (1:26-27)에서도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으므로(2:3) 바울 사도는 탄성을 지르며 우리에게도 이를 깨닫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우리에게 알게 하려는 행복의 탄성은 어떤 것인가? 물론 그것은 사람의 지식이나 판단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 보자.

 

1. ‘누가 주의 모사가 되었느뇨하신 말씀이다(40:13)

  세상의 왕이나 통치자들은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중요한 일을 시작할 때 모사가 되는 신하들의 의견을 수렴하게 된다. 그러면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는 누구의 의견을 수렴하실까?

  알미니안주의자는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어떤 행위를 필요로 한다고 하는 신인협동설을 주장하는데, 그러나 이런 생각은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구원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의 주장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사가 필요하지도 않고, 그분의 깊으신 뜻을 헤아려 도움을 주고 협력할 만한 아무런 존재도 필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1:4-5)”라고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고,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달아야 한다(2:8).

 

2.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11:35)’ 하신 말씀이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 빚이 있어서 그 빚을 갚는다는 뜻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도 받을 자격이 없고 자기 의를 내세울 수도 없으나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값없이 구속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받은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 무지몽매한 인간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값없이 받은 구원을 자기 공로처럼 내세우고 감사할 줄 모르며, 불만을 토로하고 은혜를 베푸신 분에게 악으로 보답하는 것이 현실이다.

  세상에서도 남의 신세를 진 사람은 자신의 무능과 연약함을 부끄러워하고 고마운 생각을 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진대, 현실은 그 반대의 경우가 많다. 신세를 지는 형편에 있으면서도 거만하게 큰소리를 쳐서, 오히려 도움을 주는 사람이 죄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할 때도 이와 같은 이치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에 대한 갚으심을 받는 것이 아니다.

 

3.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11:36)’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은 만물을 아름답게 지으신 분이시고, 만물에게 그의 뜻대로 섭리하시는 분이시며, 결국에는 목적하신 바대로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하나님의 영광을 어디서나 볼 수 있으나 찾지도 않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영광을 돌리지도 아니한다.

  바울 사도가 (1:19-21)에서 “~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증거하는 바와 같다. 그렇다. 개인이나 민족이나 모든 국가들은 제각기 자신의 목적을 설정해 놓고 그 뜻을 이루려고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실상은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진행되는 일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들의 힘으로 뜻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수종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지금 복음을 배척하며 하나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민족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무산시키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실패하게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 건설을 위해 사람들의 악한 역할까지도 섭리하시고 사용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깊고도 깊다 하는 것이며, 바울 사도는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라고 탄성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맺음) 오늘 바울 사도의 행복의 탄성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영원한 우리의 탄성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이는 바울의 이 탄성을 알프스에 처음 올라가 세상을 내려다보는 때에 나오는 것 같은 감상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런 탄성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랜드캐넌이나 나이아가라 폭포 같은 것을 보며 과연 탄성을 자아내지 아니할 자가 있을까? 그렇지만 아무리 거대하고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할지라도 반복해서 다시 본다면 그런 탄성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바울의 행복의 탄성은 우리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구원의 큰 감격을 우리에게 심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사가 필요하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그리고 우리가 받은 구원을 당연히 생각지 말고 은혜 베푸신 분에게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자. 아울러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지으시고 섭리하시며 그의 뜻대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선하신 뜻대로 쓰임을 받는 우리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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