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23.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9-01-11

거지와 거지발싸개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50년대 우리 사회는 6.25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절량가구(絶糧家口)도 많았고, 걸인도 많았다. “(미국 잡지에) 한국 피난민의 노숙 상황, 초근목피 식용 상황이 게재되었는데 절량가구에 대하여는 피난민 또는 농가, 비농가 여부를 막론하고 위선 응급대책으로 최우선적으로 구급책을 실시(국무회의록 제54-113회 문서철 중 심의일자 1952. 10. 24 내용. 국가기록원 검색)”에 나타난 것처럼 굶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50년대 후반까지도 시장뿐만이 아니라 시골에서조차 밥을 구걸해 연명하는 걸인이 많았다. 50년대 후반까지도 읍에서 시오리나 떨어진 필자의 동네까지 걸인들이 구걸을 다녔던 걸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를 짐작하게 한다.

집도 없어 농가의 짚더미에서 잠을 잘 정도이니 몇 달 동안 목욕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러다보니 더러운 행색을 할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더러운 모습이나 행동을 거지같은으로 표현했다. 그들이 옷을 빨아 입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니 그들의 옷 또한 지저분했으며 특히나 발싸개는 더욱 더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양말 살 돈도 없는 걸인들은 발싸개로 양말을 대신하였고 이들의 발싸개는 오늘날 거지발싸개라는 표현으로 남아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발싸개‘1. 매우 하찮은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2. 버선을 신을 때 잘 신기도록 하기 위하여 먼저 발을 싸는 헝겊이나 종이, 3.신을 신을 때, 버선을 대신하여 발을 싸는 헝겊 조각, 신을 신을 때, 버선을 대신하여 발을 싸는 헝겊 조각으로 풀이하였는데 본고에서는 3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실제로 버선을 가질만한 생활적 여유가 없던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이니 시간 순서로는 3 다음에 2, 2 다음에 1의 의미였을 것이나 현재에는 1, 2의 용례가 없어지니 시간의 역순인 1, 2, 3으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거지는 중국어로 乞丐[ qǐgài ]’, 한자어로 乞人이며 구걸(求乞)하는 사람의 의미인 거지는 비렁뱅이라는 고유어가 있다. 발싸개는 고유어인데 다른 말로는 감발, 발감개가 있다. ‘감발발에 감는의 말의 순서가 바뀌어 이루어진 말이고 발감개발에 감는 물건이니 말의 순서대로 이루어진 말이라 할 수 있다. 국어학자들은 감발같은 말의 순서가 바뀐 합성어를 비통사적 합성어라 한다.

 

거지나 거지발싸개를 볼 수 없는 지금 세대는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축복받은 세대가 아닐까?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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