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설교(6) 인간은 왜 죄인인가?

관리자 승인 2018-06-04

 박원규 목사 로마서 설교(6)- 이상호 목사 기록: 인간은 왜 죄인인가?(1:18-25): 만약 누군가가 마약에 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까? 정확히 대답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체적으로 마약의 중독성과 그에 따른 정신과 육체의 죽음을 말할 것이다. 마약성분이 무엇이며, 그것이 체내에 들어가서 어느 곳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포괄적으로 바르게 알고 있는 바를 말할 것이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마찬가지로 세부적인 내용은 모르지만 “~죄는 불법이라(요일 3:4)”는 사실과 죄의 삯은 사망(6:23)”이라는 개괄적인 내용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그 를 상세히 알고 대항해야 만이 그 를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죄의 성분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죽음에 이르는 독소이다.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고전 15:56)”라고 기록된 바와 같이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권능을 지녔는데, 그 권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성경은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 15:56)”고 증거 한다. 즉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드러나고, 그 드러난 죄를 사망이 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죄로 인한 사망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1:18)”라는 말씀을 통하여 죄의 성질이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죄의 성분과 성질은 육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 차원의 것이다. 그러나 이 죄는 오히려 육체적 생활과 그 정신을 지배하여 온갖 죄악을 낳게 하는 것이니,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죄악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많은 사람들은 마약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독소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때로는 호기심으로 마약을 맞고 싶어 하는 유혹을 받는다. 심지어 마약에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의료진들도 그 마수에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전문지식이 육체적인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매일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그것을 깨닫고 은혜도 받으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도 배우고, 이론적인 변론의 능력도 갖추고 있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악 된 생활의 주인공이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죄악론에 대해서 말할 때 이방인의 죄와 유대인의 죄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한 책망과 징벌에 있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다만 모르고 죄를 짓는 자와 알고도 행치 않는 자들에게 죄벌이 공정히 임하게 하실 뿐이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통하여 나타나는 인간의 죄악상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는 것이 곧 죄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대자연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알도록 지적 능력을 허락해 주셨다. 이 거대한 지구가 돌고 태양이 빛을 발하며 사시사철의 변화가 존재하는 것 등을 그 누가 저절로 되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로마서 기자는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1:19-20)”라고 증거한다.

바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하신 창조세계를 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모든 인간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는(1:21)” 것이 곧 죄이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 창조의 신비와 그 오묘함과 웅대함에 심취되어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 앞에 영광을 돌려본 적이 있는가? 우리의 하나님은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섭리하시며, 그 가운데 우리를 주인으로 만드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해야 하는 것이다.

 

2.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 곧 죄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이 곧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생활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가? 사실 우리가 감사해야 할 것은 끝이 없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는 것 등 모든 일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물론 육신적인 일에만 감사해서는 안 되고 영적인 일에 감사해야 된다. 우리를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날마다 신령한 꼴을 먹여주시며, 우리의 적은 믿음이라도 하나님을 경외케 하는 등 수많은 일들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그러나 진실로 감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고요한 시간에 눈을 감고 마음을 살펴 생각해 보자. 우리가 감사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을 받으시고 불평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신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을 모신 마음이고 불평하는 마음은 마귀를 섬기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감사조건은 대개가 자기중심적이고, 세상의 물질이나 육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시적인 감사에 그치며,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곧 망각해 버린다. 그러나 이런 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니다. 범사에 깊이 감사하는 우리들이 되자.

 

3. 하나님의 자리에 우상을 앉히는 것이 곧 죄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도 눈에 보이는 무엇을 만들어 놓고 절하기를 좋아한다. 즉 우상을 만들어서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1:23)”고 기록한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가장 큰 죄악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무슨 우상이든지 마음대로 섬기면서 그것이 자기 신앙이라고 믿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계시도 눈에 들어오는 것만 믿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계시 중에서 내 이성과 지식에 맞는 것만 믿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계시 자체가 진리임을 믿어야 한다.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보이는 것이 나타났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가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오직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들은 송아지와 뱀과 사자들을 만들어 섬기지만, 그것은 매우 가증한 것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맺음)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1:24);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1:18)”라는 증거대로 유기의 심판을 내리신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심판이다. 왜냐하면 유기된 사람이 가는 곳이 바로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택받은 우리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에게 영광을 돌려야 한다.                                                   

    <표지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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