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28.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9-04-16

세상을 둘로 나누는 말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우리는 세상을 판단할 때 둘로 나누는 걸 좋아하나보다. 사람들을 가를 때도 내 편과 네 편, 아군과 적군,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등. 그러다 보니 말도 반대말이라 하여 이 말에 대한 반대는 저 말이라는 등 이분법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사람의 성()의 문제만 보더라도 남자와 여자로만 나뉘는 것으론 제대로 표현할 수 없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남성과 여성이 아닌 제삼의 성도 있을 것이다. 편을 가를 때에도 내 편이 있으면 상대의 편도 있을 테이지만 어느 편도 아닌 중립이 있을 수 있고, 좀 더 내 편인 사람과 아주 내 편인 사람 등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세상은 둘이 아니라 여럿으로 다양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반대어라고 배운 것도 용어부터가 문제이다. 그래서 국어학자들은 반대어란 명칭이 문제가 있다고 하여, 상대어, 대립어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까지 사용해온 반대어나 반대말이 우리가 사용하기에 편한 말인 것은 사실이다. ‘앉다와 대립되는 말은 서다이거나, ‘눕다이며, ‘엄마와 대립되는 말은 일 수도, ‘아빠일 수도 있는 것처럼 상대적이지만 둘로 나뉘는 절대적인 반대는 아니다, ‘있다없다’, ‘살다죽다같은 경우는 살지 않았으면 죽은 것이고 있다가 아니면 없다이니 이와 같은 말들은 둘로 나뉘어 볼 수 있는 반대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보수진보’, ‘노인젊은이등 둘로 나누어 이쪽은 이러하고 저쪽은 저러하다는 식으로 말하기 쉽다. 이렇게 둘로 나누다 보니 사람들에 대한 표현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친구와 적등 대립되는 표현이 나오고 이렇게 대상을 이분(二分)하여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이다.

 

대부분의 경우 둘로 나뉜 반대가 아니지만 우리는 편하게 둘로 나누어 말하면서 살아간다.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思考)에 의해 이루어지는 이치적(二値的)인 표현은 둘로 나누어 표현하지만 다양함을 인정하는 다치적(多値的)인 사고는 세상을 다양하게 나누어 표현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고 표현하려면 세상을 둘로 나누어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으니 다양한 세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다치적인 표현이 요구된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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