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2.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8-02-15

국어에 나타난 ‘나 먼저 규칙(me first rule)’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심리학에는 ‘나 먼저 원리(me first principle)’가 있고, 언어학에는 ‘나 먼저 규칙(me first rule)’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와 관련된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자기와 더 친하거나 중요한 사람을 먼저 이야기한다는 것이 심리학의 ‘나 먼저 원리’인데 ‘엄마’를 먼저 이야기하고 ‘아빠’를 나중에 말한다면 ‘엄마’가 ‘아빠’보다 화자에게 더 가깝고 소중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언어학에서는 ‘나 먼저 규칙’이라고 한다. 언어학의 원리 또는 규칙이라는 것은 학자들이 만든 것일 뿐 과학의 원리나 규칙처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국어에서는 ‘부모(父母)·남녀(男女)·자녀(子女)’나 ‘콩과 팥·쌀과 보리’ 등이 ‘나 먼저 규칙’에 해당한다. 언어에는 그 말이 사용되는 언어 사회의 문화가 반영되는데 남존여비의 사상이 있던 남성중심 사회에서 ‘부모(父母)·남녀(男女)·자녀(子女)’의 예와 같이 남성을 여성보다 중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것이 ‘나 먼저 규칙’에 해당하는 예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게 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면 이들 말이 뒤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 먼저 규칙’에 대해 ‘암수·딸과 아들·숙녀와 신사’와 같이 위의 예와 다른 경우로 위의 글을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암수[雌雄]’는 사람이 아닌 동식물을 표현하는 것으로 동식물의 번식이 경제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암컷 동물(암소·암말·암탉)’이 ‘수컷 동물(수소·수말·수탉)’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보면 ‘나 먼저 규칙’이 맞는다.

‘딸과 아들’이나 ‘숙녀와 신사’는 화자가 의도적으로 순서를 바꾼 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가족계획 표어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에서 아들 선호 사상을 없애기 위해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나아 잘 기르자’로 바뀌었다고 보거나, ‘ladies and gentlemen’을 처음엔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통역하다가 ‘숙녀 신사 여러분’으로 바꾸어 사용했다면 영어를 직역했거나 여성을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 영어에서 ‘ladies and gentlemen’이나 ‘여성 먼저(ladies first)’는 ‘여성’을 배려하기 위해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이야 딸이 아들보다 나은 세상이 되었으며 성별에 따른 차이가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힘센 남자들이 가정의 보호를 책임져야 했던 때라 남성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국어 사용자나 다른 언어 사용자나 서로의 생각이 비슷하다면 그 언어에 나타난 표현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 ‘나 먼저 규칙’은 대부분의 언어에 나타난다고 본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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