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표지(交通標識)’가 ‘교통표식’으로 바뀌려나?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표지’와 ‘표식’의 한자는 ‘標識’(이)다. ‘識’은 ‘알다’는 뜻으로 ‘지식(智識), 식자(識者)’와 같이 쓰이는 글자이나 ‘기록하다’는 뜻으로 쓸 경우에는 ‘표지(標識), 000 지(識)’로 쓰인다. 한자(漢字)가 의미에 따라 음이 다를 경우가 있는데 이를 다 아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고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교통 관련 안내를 나타내는 교통표지(交通標識)는 바로 교통 관련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기록한 것이기에 ‘표식’이 아니라 ‘표지(標識)’이다.
필자는 1980년대 말에 컴퓨터 한글프로그램 사용설명서에서 ‘표식’이란 용어를 접했는데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식’이란 말을 하고 있다. 이를 ‘표지’로 사용한 경우를 의학에서 진단에 지표가 되는 표지자(예: 암표지자(cancer marker)’이외에 본 기억이 별로 없다. ‘통행금지 표지, 공중전화 표지. 화장실 표지’를 사용하기보다 ‘통행금지 표식, 공중전화 표식. 표식’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을 정도가 아니라 필자가 ‘표지’라고 하면 사람들이 도리어 이상하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한자로 기록된 글을 읽을 때 보통 잘 알고 있는 음대로 발음하고 글로 적게 된다. ‘표지(標識)’의 ‘識’를 ‘기록하다’의 뜻인 ‘지’로 읽기는 쉽지 않기에 ‘표지’를 ‘표식’으로 글로 쓰고 말하다 보니 어느 새 ‘표식’이란 말이 지식인이란 학자나 기자들에게서조차 사용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한자의 음을 잘못 알고 사용하는 말이 새로운 표준어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잘못 알고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가 되는 언어 현상이다.
북한의 문화어는 ‘표지’가 아니라 ‘표식(標識)’이다. 표지란 말은 조선말 사전(1962년 조선 민 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의 언어 문화 연구소 사전 연구실 편찬, 과학원 출판사)에 수록되어 있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표지’가 아니라 ‘표식’으로 사용하지만 아직까지는 국립국어대사전에서‘표지’를 표준어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대다수 사람들이 ‘표식’이라 하니 표준어로 ‘표식’을 인정하자.”고 하면 한자의 음과 상관없이 ‘표식’을 복수 표준어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표지’를 옛말처럼 취급하고 ‘표식’이 단일 표준어가 될 날도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이렇게 되면 북한어가 남한어를 밀어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나타난 ‘표식’
표식(標識) 표식「003」「명사」표시나 특징으로 어떤 사물을 다른 것과 구별하게 함. |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