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설교] 박원규목사 로마서 설교(11) 이것이 유대인의 죄상이다 (롬 2:17-24)

관리자 승인 2018-08-13

박원규목사 로마서 설교(11) 이것이 유대인의 죄상이다 (롬 2:17-24): 사람들의 역사관은 시대를 따라 변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정치 중심으로 역사가 기록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군사력에 초점을 맞춰 기록되기도 하는데, 요즘에는 경제활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곳에다 인류역사의 초점을 맞추시고 계실까? 그분도 역시 가장 관심이 있는 곳에 역사의 초점을 맞추신다.

물론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다. 그분의 관심은 오직 유대인에게 있음을 성경과 그에 따른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도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라고 시작하는 것처럼 이 유대인은 하나님의 눈이 떠나지 아니하는 관심의 대상이며, 그들의 역사는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선민의 역사이다.

그런데 유대인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그들은 야곱의 12아들 중 넷째 아들 유다로부터 시작된 민족을 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율법이 있고 할례를 시행하는 백성이며, 조상 때부터 섬겨오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엄청난 과오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들은 율법 자랑, 할례 자랑, 조상 자랑 등 자랑거리가 많지만 사실 이런 것들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런 외형적인 조건들을 주신 것은 그 이면에 참된 자랑거리를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어둡고 둔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의 근본적이고도 가장 큰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가장 참 자랑거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했지만, 도리어 복음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해서 오늘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대적하는 자로 그 이름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 유대인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1. 유대인의 죄는 율법의 참뜻을 모르는 죄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고 있지만, 그 율법이 왜 자랑거리인지 모르는 채 율법 자체를 자랑하고 있다. 율법은 왜 자랑할 만한 것인가? 그것은 율법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저주 아래에 있음을 알게 하여 구원 받을 수 있는 다른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믿게 하므로, 구원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지시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역사를 율법의 역사와 복음의 역사로 구분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율법은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할 뿐이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율법으로 구원받던 시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이 복음보다 훨씬 뒤에 주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그 자체가 죄인 것이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가? 혹 우리들도 복음의 참뜻을 모르고 외형만 그리스도인으로 행세하지는 않는가? 만약 마음에 참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놓고 믿는다면, 이는 유대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자들은 정신병자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몰라보고, 아무나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라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선택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해주시고 믿게 해주셨음을 알아야 한다. 율법의 참뜻을 모르는 것은 근본적인 죄이다.

 

2. 유대인의 죄는 율법을 스스로 범하는 죄이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음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날마다 말하며 가르치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칭찬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다음과 같이 책망하셨다. (23:2-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라고 기록된 바와 같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므로 그 율법이 자신들이 행할 바라는 사실을 아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율법을 말하면서도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것은 율법을 몰라서 율법을 못 지키는 이방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즉 율법을 말하면서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율법을 범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말씀을 따라서 행실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쯤은 세상 사람들도 익히 알고 있는데, 성도의 삶이 바른 길로 가지 못하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욕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비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마서 기자는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2:23-24)”라고 증거 한다.

 

3. 유대인의 죄는 남을 가르치되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죄이다.

다른 사람을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먼저 습득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만을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는 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스승의 행위를 통해서 더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는 남을 가르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가르쳐 남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고보 기자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3:1)”고 증거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정한 교육이라는 것은 지식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생활의 본을 보여 배우게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께서도 사랑을 가르치실 때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또한 친히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사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시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가르쳐야 한다. 자기 자신을 가르친다는 것은 곧 말씀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맺음) 하나님께서 유대인의 죄를 책망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유대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유다 지파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나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초점이 맞추어진 신령한 유대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의 흥망성쇠가 우리 자신의 거울임을 알고 참 신앙의 길을 가야 한다. 만약 유대인의 죄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예수님과 내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는 유대인의 역사를 거울삼아 그 속의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우리의 참 자랑거리임을 깨닫고 감사하여야 한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자요 마침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되자.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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