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3. 이충우 박사의 국어교실

관리자 승인 2018-02-18

‘앞·뒤’와 ‘전(前)·후(後)’



                                                                                               이충우(국어교육학박사, 전 관동대학교 사범대학장)


우리말에는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한 우리 고유의 순수한 토박이말이라는 고유어, 한자로 이루어진 한자어, 한자어가 아닌 말로서 외국에서 들어 온 말이라는 외래어와 이들 고유어·한자어·외래어 등이 섞여서 만들어진 혼종어(混種語) 등이 있다. 보통은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 등으로 구분하여 사용한다. 학자들은 한자어도 불교에서 유래된 한자어, 중국에서 들어 온 한자어, 일본에서 들어 온 한자어, 우리가 한자의 뜻을 가지고 만든 한국 한자어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국어를 순화하기 위해 한자어보다 고유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한자어를 고유어로 바꾸어 쓰자는 운동도 있지만 한자어나 외래어 등 모두 나름대로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한자어와 고유어를 일대일(一對一)로 바꿀 수 있는 예로 고유어 ‘앞과 뒤’와 한자어 ‘전(前)과 후(後)’를 말하지만 이들이 같은 뜻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앞’과 ‘전(前)’의 차이

공간을 나타내는 ‘앞’과 ‘전(前)’의 차이는, 우리가 승객이 원주시청 바로 전 정류소에서 내렸을 때 ‘원주시청 전 정류소에서 내렸다’고 말하고, 원주시청 앞의 정류소에서 내렸을 때는 ‘원주시청 앞 정류소에서 내렸다’고 말한다. 이때 ‘원주시청 앞’이라는 말은 ‘원주시청에서 제일 가까운 정류소’가 될 것이고, ‘원주시청 전(前) 정류소’는 ‘원주시청 앞 정류소 직전의 정류소’가 될 것이다. ‘앞’과 ‘전(前)’이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은 경우이다.

시간을 나타내는 ‘앞’과 ‘전(前)’의 차이는, ‘내가 앞에서 말을 했다’거나 ‘네가 전에 내게 말을 했다’는 말에서 ‘앞’과 ‘전(前)’은 둘 다 ‘지금 말하는 시각보다 먼저인 때이며 지나간 때’이다. 그런데 ‘앞날의 어려움을 걱정했다’는 말에서는 ‘앞날’이 미래이지만, ‘전일(前日)의 잘못을 후회하였다’는 말에서는 ‘전일(前日)’이 과거이다. 그러나 ‘전정(前程, 앞길)이 구만리 같다’는 말에서 ‘전정(前程)’은 미래이나 다른 한자어 ‘전정(前定, 앞에서 정해진)’은 과거이다. 이렇게 ‘앞’과 ‘전(前)’은 시간을 나타낼 때는 과거와 미래에 모두 사용되며 맥락에 따라 사용되는 의미가 다르다.

 

‘뒤’와 ‘후(後)’의 차이

공간을 나타내거나 시간을 나타내는 ‘뒤’와 ‘후(後)’의 의미 차이는 별로 없는 듯하다. 시간을 나타내는 ‘뒤’와 ‘후(後)’의 ‘뒷일을 걱정했다’거나 ‘후일을 걱정했다’는 말은 ‘뒤’와 ‘후(後)’가 모두 미래를 나타내기 때문에 바꾸어 쓸 수 있다.

다만 ‘뒤를 보다’나 ‘뒷간’처럼 ‘뒤’가 ‘대변(大便)’을 나타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더러운 사물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한 언어의 특수한 용법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 ‘뒤’는 ‘후(後)’로 교체될 수 없다.

 

‘앞’과 ‘후(後)’의 쓰임

시간을 나타내는 ‘앞’은 과거와 미래에 모두 쓸 수 있으나 ‘앞날’은 미래를 나타낼 때만 쓰인다. 훗날(後-)이 걱정된다거나 뒷날이 걱정된다는 말에서 ‘後’와 ‘뒤’는 ‘미래’를 나타내기 때문에 ‘훗날(後-)’이나 ‘뒷날’을 ‘앞날’로 바꾸어 쓸 수 있다. 또한 후일(後日)이 걱정된다는 말에서 ‘후일(後日)’은 ‘훗날(後-)’이나 ‘앞날’과 바꾸어 쓸 수는 있으나, 과거를 나타내는 ‘전일(前日)’은 ‘지난 날’이기 때문에 ‘앞으로 올 날’인 ‘앞날’로 바꾸어 쓸 수 없다.

 

우리는 고유어와 한자어가 단순하게 일대일(一對一)로 바꾸어 쓰일 수 없음을 위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다. 고유어는 고유어대로 여러 의미가 있고, 한자어는 한자어대로 여러 의미가 있는데 이들 의미 중 일부는 서로 바꾸어 쓰일 수 있지만 일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학자들은 엄밀하게 따지면 모든 단어는 각각 나름대로 사용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다른 단어와 바꾸어 쓴다면 의미가 달라진다고 본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단어의 의미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에 우리는 다른 말로 바꾸어 쓸 수 있다고 본다. 언어학자들의 생각보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대다수 일반인의 생각대로 언어는 사용되는 것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로 언어를 다루기보다는 ‘적절한지, 적절하지 않은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한자어에 관한 글을 올릴 예정이다.



<사진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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